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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 16 중국에 넘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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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베네수엘라와 중국이 밀착하면서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반미.좌파 노선을 걷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중국과의 협력 분야를 에너지.항공우주.교통 산업으로 계속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원유 수입의 약 15%를 베네수엘라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우고 차베스(51)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이 1980년대 자국에 공급했던 F-16 전투기를 중국에 팔겠다고 공언했다. 미 국방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 "낡은 F-16기를 중국에 넘기겠다"=중국은 베네수엘라가 처음 쏘아 올릴 통신위성 '시몬 볼리바르'호의 설계.제조.발사를 맡는 계약을 1일 체결했다. 중국 창청(長城)공업과 베네수엘라 과학기술부가 계약 당사자였다.

이날 서명식에 참석한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이 기절초풍할 발언을 했다. 그는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F-16기와 관련한 부품과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합의를 위반했다"며 "F-16기를 중국이나 쿠바에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80년대 베네수엘라에 24대의 F-16기를 팔았다. 하지만 98년 차베스가 취임한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히 나빠졌다. 양국 관계는 지금 최악의 상태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에 F-16기 부품과 군수 물자 판매를 중단했다. 차베스의 발언은 바로 이걸 근거로 하고 있다.

그는 "24대 중 10대를 중국 또는 쿠바에 팔겠다"며 "그런 다음 중국.러시아제 최신형 전투기를 구매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중국으로선 F-16기를 넘겨받으면 미국 전투기의 성능과 기술을 파헤칠 수 있다.

이에 대해 미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 법률상 미국산 무기를 구매한 외국 정부가 이를 제3국에 파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F-16기가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베네수엘라 간 통신위성 협력사업도 미국의 신경을 건드린다. '시몬 볼리바르'호는 중국 우주과기집단 산하의 공간기술연구소가 만든 '둥팡(東方)4호'를 모델로 할 계획이다.

2008년 발사돼 서경 82.7도의 궤도를 돌면서 베네수엘라 전역에 통신.방송 전파를 서비스할 예정이다. 중국으로선 유인 우주선 발사로 개가를 올린 항공우주 분야에서 남미 진출이라는 새로운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베네수엘라 간 관계는 더욱 험악해질 전망이다. 세계 5위의 산유국임을 앞세운 차베스의 반미 행보는 이미 통제불능이다. 베네수엘라는 최근 고유가 행진으로 오일 머니 수입이 늘어나자 제3국의 첨단 무기 구매도 늘리고 있다. 러시아제 자동소총과 공격용 헬기, 스페인 군함, 브라질 군용기 등이 그런 예다.

◆ 유전 개발 등으로 협력 확대=차베스 대통령은 미국 주도로 추진되는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대해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이 기피하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과의 협력.교류를 늘려가고 있다.

중국은 베네수엘라를 에너지 확보와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매달 12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공급량은 하루 6만 배럴로 늘어났다. 베네수엘라는 장기적으로 중국 석유 소비량의 15~20%(하루 90만~120만 배럴)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 8월엔 매장량이 10억 배럴 이상으로 추정되는 15개 유전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그 대가로 베네수엘라는 중국으로부터 농업 개발, 철도 건설, 교역 확대 등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중국은 국제 외교 무대에선 묵시적으로 차베스의 반미 노선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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