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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25와 이승만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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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국군사병이 일선에서 전사하면서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며 평안한 마음으로 목숨을 거둘수있게 해달라는 청원을 했다고 손원일 제독이 대통령에게 군목제도를 설치할 것을 건의 했다.

<군목제도 실시 모색>
감리교 목사의 아들인 손제독은 해군에는 이미 몇사람의 목사가 종군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되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대통령은 국군창설당시 이범석장군과 군목제도에 대한 상의를 했었는데 이범석 국무총리가 우리군은 기독교신자도 있고 불교신자와 천주교신자와 천도교신자, 그리고 원불교신자도 있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인을 의한 군목제도는 차차 연구해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말해서 그때까지 미루어왔었다.
그러나 우리국군의 절실한 요청이었으니 빠른 시일안에 가능한대로 군목제도를 실시하는 방향을 모색해 보도록 하라고 신국방장관에게 대통령은 지시했었다.
대통령은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낙준박사를 국무총리에 지명하여 국회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부결되었다.
대통령은 이당시 조만식박사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백박사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는데 국무총리는 이북사정을 잘 알아야되고 또 북한주민들이 친밀감을 느낄수 있는 인물이라야 된다고 대통령은 생각 했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빨리 복구하고 건설하기 위해서는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많이 양성되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기술자들은 단기간 내에 철로복구작업을 훌륭하게 해내어 외국인들의 칭찬을 받았으니 기술을 수련하고 연마할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른 어느나라 기술자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통령은 말했었다.
그리고 나무를 사랑하며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대통령은 특히 우리나라의 삼림을 보호해야한다고 농림부장관에게 나무를 함부로 베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강력히 지시했었다.
경무대에서도 겨울에 경호원들이 나무를 베어다가 화목으로 썼을때 대통령은 모두 구속하여 벌을 준뒤에 훈방한 적이 있었다.

<서울~평양 전화개통>
미국에서 구축함 2척이 도착하여 부산항에서 명명식이 있어 참석했는데 배이름을 압록강호와 두만강호라고 했던것으로 기억된다.
13 엔 서울∼평양간의 전화가 6년만에 개통 되었다. 곧 서울과 원산, 서울과 함흥 전화도 연결되리라고 한다.
이 당시 특히 우리나라의 전쟁고아들을 미군병사들이 따뜻이 보호해주고 잘 돌봐준 사례들이 있어서 참으로 고맙게 느낄 때가 가끔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처녀들이 얼마나 순결하고 정조관념이 대단했었던지 어느 외국 병사가 반가와서 껴안아본 어떤 처녀는 부끄러움과 수치감을 못이겨 한강에 떨어져 투신자살한 일까지도 있었다.
「트루먼」대통령이 반미 푸에르토리코단체에 속하는 청년에게 불레어하우스 앞에서 저격당했으나 무사했었다.
미국상원의원 「놀랜드」 씨가 우리나라의 통일과 부흥문제를 위해 내한했었는데 원래 「놀랜드」 상원의원은 한국문제를 퍽 성의있게 도와주려고 애쓰며 공헌이 있는 한국의 친구였다.
「놀랜든 의원이 우리를 방문 했던날 갑자기 날씨가 영하6도까지 내려간 추위때문에 난방시설의 불비로 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놀랜드」상원의원에게 유엔이 한국민족믈 분단시킨 선이었던 38선을 다시 만드는 것은 가장 현명치 못한 일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트리그브·리」사무총장이 몇주일전 그가 연설을 할때 다만 임시적인 선일뿐이라는 말을 했지만 아뭏든 언어도단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압록강이 얼기전에>
우리 애들이 38선을 통과하는데 1주일을 기다리도록 유엔군이 제지시키지 않았더라면 더 빨리 압록강에 도착했었을 것이다.
유엔군과 한국군이 일치해서 북진했더라면 훨씬 희생도 적었고 전과도 더 컸을 것이었다.
1주일간을 기다린것이 그당시의 상황을 뒤집어 놓게된 원인이었다.
우리군대가 미군들과 청천강에서 합류키 위해 후진할때에 우리측에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적은 많은 무기와 장비를 공급받을수 있었다.
아뭏든 압록강다리를 폭파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중공군이 더 손쉽게 내려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미국인은 많은 중공군이 압록강다리를 건너 오는 것을 목격하고 놀란 다음에 결국 다리를 폭파해야만 그들을 제지 시킬수 있다고 판정을 내렸다.
미국의 유화정책자들은 중공군을 제지시킬 .제2의 최선책은 중국공산당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풍댐을 할애해서 전기를 쓸 수 있도록 약속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외교상의 어떤 이득을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군사적인 계획을 잘 추진시켜야 할것이 아니었겠는가.
우리 한국국민들은 「맥아더」사령부가 수풍댐을 가지고 흥정을 벌이고있다는 발표를 듣고 무척 비위가 상했다.
왜냐하면 누구나 알다시피 그 비열한 공산집단과 상호 협의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놀랜드」 상원의원과 동해안을 시찰 했을때 어찌나 혹한이 몰아쳤던지 해안가에도 엶은 얼음이 얼었었는데 미군들도 제대로 따뜻한 옷을 못입을 정도였다니 우리 한국군인들의 고생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고생과 추위 속에서도 우리국군과 미군들의 사기는 대단히 높았고 특히 우리 국군들은 기어이 통일의 과업을 완수시키겠다는 결의에 차있었다. 어떤 미국의 유학정책도 모두우리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대중공 정책에 의문>
몇몇 군사 전문가들은 보급물자와 장비를 더 많이 공급 받을수 있는 봄까지 싸우는 것을 지연시켜 보려고까지 했었다.
이 전문가들은 압록강이 얼면 중공군들이 더 많은 중장비와 보급물자를 싣고 내려오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로든지 공산당의 중공탱크가 한국땅에 들어와 돌아다니기 좋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11월7일자 「콘스탄틴·브라운」이 그의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중공이 그들의 특권을 계속 누릴수 있도록 방치해 둘 것인가? 유엔은 만주에 있는 중공의 보급기지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은 군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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