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가 몰래 녹음해 야당 넘겨, 전문가 “취재윤리 위반 … 위법소지 다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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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언론 보도 개입 발언 파문이 커지고 있다. 발언 자체의 부적절성 논란은 물론 보도 과정의 윤리적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10일자 신문 1면 ‘알려드립니다’에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언론 관련 녹취록을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 쪽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의 발언을 소속 기자가 녹음한 뒤 김 의원에게 전달했고 이것이 KBS로 넘어가 보도됐다는 것이다. 해당 발언을 몰래 녹취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직접 보도하는 대신 특정 정당에 제공, 취재의 정도를 어겼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날 ‘이완구 총리 후보 녹취록 공개 파문 관련 본보 입장’을 싣고 녹취록 입수와 유출에 대한 경위를 밝혔다. “취재 내용이 담긴 파일을 통째로 상대방 정당에 제공한 점은 취재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7일 이 후보자가 본보 기자를 포함, 일간지 기자 4명과 점심식사를 나누던 중 일부 기자가 이 후보자의 발언을 녹음했다”며 “이 후보자의 왜곡된 언론관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기사화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당시 그가 차남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매우 흥분된 상태였고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었다고 판단해 보도를 보류했다”고 밝혔다. 이어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언론관에 대한 추궁을 준비하고 있던 김 의원실 쪽에서 녹음파일을 요구했고, 본보 기자는 취재윤리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파일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이번 녹취록 파문은 취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은 물론이고 특정 당에 통째로 녹취파일을 넘겨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윤리적인 문제를 낳을 수도 있는 녹취를 그간 언론의 취재관행으로 용인해온 것은, 그것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용이라는 전제 때문이었다”며 “이를 정치권에 넘겼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을 포기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보도윤리강령은 “취재원의 동의 없이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속임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4년 아사히신문 기자가 몰래 녹음한 취재원과의 대화 내용을 제3자에게 전달한 사실이 확인돼 퇴사처분 됐다.

양성희·봉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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