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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급전 풀어 부도예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1년 남짓 만에 통화의 수문이 다시 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최근의 대형경제사건들로 자금시장이 심각한 상황을 보이자 통화당국은 일단 한은의 중소기업 상업어음 재할비율을 올리는 등 「급전」을 풀어 고비를 넘기기로 방침을 세웠다. 긴축과 안정의 대전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사태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금융신용질서 자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까지 0.04%였고 이달 들어 0.06%수준이던 시중 어음부도율은 지난 26일 0.3%로 급격히 뛰어올랐고 27일에도 0.22%로 여전히 위험수위에 가깝다. 또한 영동개발진흥·서일종합건설·신한주철 등 이번 경제사고와 직접 관련된 기업의 부도액수를 빼고 계산하더라도 26일과 27일의 시중어음부도율은 0.13%로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명성·영동사건의 여파로 시중에 돈이 안돌아 허약한 중소기업들이 많이 쓰러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선 어음받기를 매우 꺼리는 분위기다. 특히 몇몇 소문난 건설업체의 어음은 아예 융통이 안되고 있다.
사채시장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기업의 급전요구가 가장 먼저 닥치는 단자사들은 이미 지난27일 돈이 모자라 은행에서 꾸어다 쓴 액수가 3천억원에 육박, 추석직전보다 은행차월이 단숨에 1천억원가량 늘었다. 이는 은행들이 정한 차월한도 2천2백억원을 8백억원이나 넘어선 것으로 역시 올들어 최고 수준이다.
이같은 시중의 자금압박은 즉각 은행으로 몰려들고 은행은 다시 한은에 기댈 수 밖에 없어 한은은 ▲각은행이 확인해준 중소기업상업어음을 한은이 다시 할인해주는 이른바 중소기업상업어음재할비율(현행 70%)을 인상하고 ▲각 은행이 취급한 중소기업자금대출중 일정비율까지를 한은이 각 은행에 직접 대출해주는 이른바 A1한도자금대출도 늘려주기로 하고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A1한도자금대출중 중소기업자금지원을 위한 대출은 ▲연리8%로 ▲각 은행의 중소기업자금대출의 30%까지 ▲각 은행의 중소기업자금의무대출비율(시중은행은 전체대출외 35%, 지방은행은 55%)을 넘어선 대출에 대해서는 이의 70%까지 한은이 대출해줄 수 있도록 돼있는데 이 비율을 올려 급전을 풀어대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은은 내달 초순 금융통화운영위원회를 열고 인상비율을 결정키로 하고 실무작업을 진행중이다.
한은은 또 새로 풀려나가는 돈들은 각 은행이 모두 기업대출에 쓰지 않고 당장 심각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는 조흥은행에 1년만기 정기예금식의 동업자예금을 들도록 방침을 정했다.
한편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통화공급에 따라 당초 9월말 15%, 연말 15% 이하로 잡아놓았던 총통화증가율 목표는 의미가 없어졌으며 한은의 한 관계자는 9월말 총통화증가율부터가 16∼17%선에서 잡히면 다행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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