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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세계에 한국 미술 알리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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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스페인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발렌시아. 그곳에선 요즘 문화축제인 '발렌시아 비엔날레'가 한창이다(9월 24일~11월 30일). 올해가 3회째인 이 행사의 총감독(커미셔너)은 한국인 김승덕(51)씨. 국내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 미술계에서 굵직굵직한 전시를 기획해 명성을 쌓아왔다.

이화여중.고를 나온 뒤 1973년 유학을 떠나 뉴욕 메리마운틴대(미술사 전공), 뉴욕종합대 대학원(문화사 전공), 헌터대 대학원(미술사 전공)을 졸업한 김씨는 17년간 미국에서 생활했다. 88년 서울 올림픽공원에 조각공원이 생길 때 실행위원으로 일하며 국내 미술계에 첫 발을 디뎠다. 그는 "비록 말단 스태프였지만 쟁쟁한 외국 작가들과 작업한 첫 경험이라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유럽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김씨는 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동양으로 가는 길'이란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큐레이터(전시기획자)로 국제 무대에 정식 데뷔했다. 이 때 그가 함께 일한 작가가 오노 요코(비틀스 멤버인 존 레논의 부인)와 구보다 시게코(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의 부인)였다.

이후 95년 베니스에서 열린 '아시아나'를 김씨는 일생에서 가장 의미 깊은 전시로 꼽는다. 이 때 홍명섭씨 등 다섯 명의 한국 작가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저로선 해외에 한국 작가를 알린 첫 전시였거든요. 당시만 해도 한국인이 해외 전시회에 참가할 땐 여러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최 측에 모든 비용을 다 대도록 고집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9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소형 조각 트리엔날레'엔 설치미술 작가 이불씨와 김수자씨를 초대했다.

"지금은 두 분 다 무척 유명하죠. 당시만 해도 신인이라 주최 측에서 고개를 갸우뚱했었는데 나중에 이름이 알려진 뒤 저더러 '어떻게 그렇게 좋은 분들을 발굴했느냐'며 호들갑을 떨더라고요."

현재 발렌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에도 한국 작가 세 명의 작품을 전시했다. 작고한 조각가 문신씨를 비롯해 신예 작가인 김홍석씨, 프랑스 디종대에 재학 중인 황종명씨가 그들이다. 파격적인 발탁이라고 하자 그는 "작품만 좋다면 중진이든, 대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초청하는 게 내 원칙"이라고 했다.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파리에 살며 1년에 몇 달은 미술계의 흐름을 읽기 위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그는 사실 '한국인'이라기보다 코즈모폴리턴에 가깝다. 미술이 좋은 이유도 '국경과 언어에 관계없이 마음으로 통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선지 '국제 미술계에 한류를 전파한다'는 주변의 평가에 대해 그는 "한국 작가라서가 아니라 작품이 훌륭해 소개한 것 뿐"이라고 했다.

김씨는 자신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제1회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 개막행사(11월 5일)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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