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첫 결심, 처음 실천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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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금연·절주·운동 등 건강을 지키기 위해 새해 첫날 호기롭게 시작했던 계획들-. 그 단단했던 결심이 말랑말랑해지며 무뎌질 때다. 다행스럽게도 음력설이 있는 우리에겐 흐지부지되고 있는 결심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는 셈이다. 새해 ‘첫 결심’이 잘 진행되고 있나, 가족들에게 ‘첫 공개하는’ 거라며 호언장담했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나 돌아보며 계획을 다시 점검할 때다.

 시간적으로 가장 앞서거나 순서상으로 제일 앞서는 것을 가리킬 때 ‘첫’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첫’은 ‘맨 처음의’이란 의미의 관형사로 “새해 첫 결심이 잘 진행되고 있나”와 같이 쓰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신년 맨 첫 번째 결심이 잘 진행되고 있느냐는 말이다.

 “가족들에게 첫 공개하는 거라며 호언장담했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나”의 경우는 어색하다. 관형사는 체언(명사·대명사·수사) 앞에서 그 체언의 내용을 꾸며 주는 품사이므로 동사 ‘공개하다’ 앞에 ‘첫’이 놓일 수 없기 때문이다. ‘첫 공개하는’을 ‘처음 공개하는’으로 고쳐야 맞다.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이란 뜻의 명사 ‘처음’은 용언(동사·형용사)을 꾸미는 부사어로 사용할 수 있다.

 두 낱말이 의미적으로 같다 보니 문장에서의 기능까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첫 계획한 대로라면 세상에 못 이룰 게 없을 것 같지만 대부분은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새로운 행동을 강화하기 위해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첫 제시한 덕목은 가능한 한 많은 이에게 알리고 예외를 두지 말라는 것이다”처럼 써서는 안 된다. 관형사는 계획하다·제시하다 같은 동사를 꾸밀 수 없으므로 부사어 ‘처음’이 와야 한다. ‘첫 계획한’은 ‘처음 계획한’, ‘첫 제시한’은 ‘처음 제시한’이라고 해야 바르다.

 “금연클리닉 첫 방문” “마라톤대회 첫 참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첫’이 명사 ‘방문’과 ‘참가’를 꾸미는 것처럼 보이나 문맥상 ‘방문’과 ‘참가’는 ‘-해(-돼)’가 생략된 동사로 사용됐다. ‘첫’을 ‘처음’으로 고쳐야 올바른 문장이 된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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