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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파장 한국에 곧 상륙|새뮤얼슨 교수(본지 고정기고가)가 진단하는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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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년이상 불황속에 허덕이고 있는 서방경제에 금년 들어 약간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미국경제가 상당히 강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관심은 미국의 경기회복이 한국을 포함한 나머지 세계의 경제를 장기적 불황의 늪에서 끌어낼 만큼 지속적인 내구력을 가졌느냐에 쏠리고 있다. 미국매사추세츠공대(MIT)「폴·새뮤얼슨」교수는 이에 대해 84년쯤이면 한국 등 신흥공업국들도 경기회복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런 전망에는 약간의 단서가 붙어있다. 미국의 경기회복세는 금년 4·4분기부터 둔화되고 84년 말쯤까지 계속될 정도라는 것이다. 자기는 신문보도보다는 낙관적이고 「레이건」행정부의 경제각료들보다는 비관적인 눈으로 경제전망을 내다보고있다고 스스로 평가한「새뮤얼슨」교수는 「레이건」 행정부가 안고있는 구조적 재정적자폭이 너무 커서 고금리현상이 유지될 것이고 이 때문에 경제회복세가 잠식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새뮤얼슨」교수와의 일문일답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 주>
-장두성특파원=이제 미국경제가 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남은 의문은 미국의 경기회복이 세계의 나머지 경제, 특히 한국 등 신흥공업국을 불황에서 이끌어 낼만큼 강력하고 지속적인 것이냐는데 집중되고 있습니다.

<회복속도는 느려>
▲「새뮤얼슨」교수=1년 전에 경제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 보다는 회복세가 강력합니다. 그러나 그건 레이거노믹스가 주효해서가 아니라 연방준비은행의 통화정책 덕분입니다. 미국 경제회복의 영웅은 일반소비자들입니다. 자본형성이라든지 실비투자는 이번 경기회복에 큰요소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걸 입증하고 있습니다.
경제회복을 미국이 선도함으로써 우선 일본과 서독경제가 추진력을 얻을 것으로 보지만 프랑스·이탈리아 등이 도움을 받게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릅니다.
아마 84년쯤이면 한국 등 저개발국 (기자는 계속 질문 때 한국을 신흥공업국, 즉 NIC로 표현했지만 「새뮤얼슨」교수는 끝까지 저개발국, 즉 LOC라는 명칭을 고집했다)도 어느 정도는 혜택을 받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은 83년 중반 같은 생산증가수준을 계속 유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3·4분기는 2·4분기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그 다음부터 회복세의 속도는 즐어들면서 84년11월 미국대통령선거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문제는「레이건」행정부가 갖고 있는 구조적 재정 적자폭이 너무 커서 고금리현상이 계속되어 회복세를 잠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사의 입장에서 보면 초기 경기회복 뒤에 회복세가 둔화되는 것은 정상이긴 합니다.
앞으로 실업률도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고 인플레문제도 확실히 치유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미국 경제에대해 낙관론자가 아닙니다. 신문보도만큼 비관적은 아니지만 「레이건」행정부의 경제관리들 보다는 비관적이라고 할까요.

< "내수-수출 균형을">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회복이 소비자 경기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경제의 주축은 수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출이 내수와 균형된 신장을 보이지 않는다면 내수경기만 활발해질 경우 무역적자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그런 조건 아래서도 내수에 의한 경기회복이 바람직할까요? 다른 신흥공업국에서도 그런 경제회복양상이 보입니까? ▲일본에서 그런 양상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일본은 늘 수출분야에서 붐이 일어나 경제회복세를 이끌도록 기다리는 경향이 있어서 다른 나라들이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내수경기의 주도현상은 2∼3년만 지속되고 다시 수출과의 균형을 이룬다면 별 위험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에서처럼 그런 현상이 장기간 계속되면 안전하지 못하지요.
스칸디나비아제국들은 19세기 중반부터 1973년께까지 경제성장을 계속해서 유럽에서 가난한 지역으로부터 부유한 지역으로 도약했습니다. 1930년대부터 73년까지 40여년 동안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서 복지국가를 건설했지만 생산성이 높아 그 비용을 감당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73년부터 생산성이 줄어든 반면 생활수준은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내수는 줄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되니 수지균형의 역조현상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지요. 한국처럼 자연자원이 제한된 나라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수증가현상이 장기화하지 않는다면 재앙을 초래하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독자성장 불가능>
-교수께서는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의 장래를 아주 밝게 전망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전망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아니면 80년대 국제경제에서 그런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띠는 요인이 발견되고 있습니까?
▲나는 세계의 다른 지역과 비교 할때 이들 나라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경제전망은 미국이나 기타 유럽국가의 경제전망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됩니다. 한국이야 앞으로도 연간 8%나 10%씩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 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경제가 침체해 있거나 연간 1∼2%의 성장을 보인다면 한국경제도 억제될 것입니다.
최근 일본의 80년대 경제계획을 보니 성장률을 4%로 수정했더군요. 60년대에는 일본이 성장률을 8∼10%로 잡았던 것과 비교할 때 대단한 후퇴입니다.
한국의 경우 앞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외채상환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장률을 8%수준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울듯합니다. 5∼6%로 조정해도 되겠지요.
-그 이유는 한국의 성장과 서구경제의 성장도에 불균형이 나타나면 보호주의 압력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인가요?
▲그렇지요. 한국이 10% 성장을 계속하면서 수출이 차지하는 부분을 현재대로 끌고 간다면 서구시장에 나오는 한국수출의 절대량-그건 우리측의 수입절대량인데-이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서구 측 경제성장이 2%에 머문다고 가정할 때 말입니다. 한국이 서구와 같은 비율로 성장한다면 한국 수출의 비율은 그렇게 두드러진 몫으로 돋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측간의 성장 불균형 아래서는 자유무역 원칙이 지켜져도 일방적인 수출성장은 어렵겠지요. 그러나 보호주의 경향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의류·구두·직물 등 미국 측에서 노조화된 산업분야에서 수출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주의 경향이 더 강합니다.

<신용 잃지말아야>
-한국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묘한 난관에 처해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3세계의 후삼국들이 우리를 추격해 오고있는 반면 선진공업국들은 길을 비켜주지 않고 있어 난국에 처해 있습니다. 빨리 첨단기술분야로 옮겨가야겠는데 기술도입이 순조롭지 않습니다. 보호주의 경향도 산업형태의 변신을 늦추는 요인이지요.
▲고도기술 분야로의 이전이 보호주의 경향을 벗어나는 첩경일지 모르지요. 고도기술 분야의 상품 10가지를 파는 것이 의류나 구두 같은 눈에 잘 띄는 소비상품 몇 가지를 수출대종으로 삼는 것보다는 보호주의의 바람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 지 모릅니다.
고도기술분야에서는 완제품이 아닌 부품만 만들어서, 예컨대 일본부품과 서독부품을 합쳐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브라질읕 비롯한 제3세계 일부국가들의 외채상환 능력이 극도로 제한됨에 따라 한국같이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외채의 수요가 긴요한 나라에서는 앞으로의 국제금융사정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관심이 큽니다. 개도국의 부채문제는 잠정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국제금융 압박현상은 장기적 추세인가요?
▲유럽과 미국의 상업은행들이 무절제하게 제3세계 국가에 돈을 제공한 것은 오일쇼크 직후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저개발국들은 석유가인상이 잠정적이 아니고 영구한 추세란걸 인식했어야 해요. 그래서 외채를 마구 끌어들이지 않았어야 합니다.
서방의 대 은행들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구원해 줄 걸로 믿고 마구 돈을 빌려줬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한번은 구제해 줄지 모르지만 두 번씩은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신용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서방은행들이 브라질·나이지리아에 인색해진다면 한국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자연 자원이 없는 한국에서는 그럼 신용도를 높이는 길은 수출을 많이 해서 외채상환을 성실히 하는 수 밖에 없겠군요?
▲또 외자의 국내시장 침투를 용이하게 하는 길도 있겠지요. 수출도 중요하지만 내수개발도 중요한 요인이라 봅니다.
-우리정부는 외채가 3백80억 달러에 달하는 큰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2, 3년간 물가상승률을 1∼0·1%에 묶어두고 연7∼8%의 실질성장을 목표로 잡고있습니다. 그런 계획이 가능할까요?

<달러강세는 지속>
▲아마 임금 및 물가 통제를 통해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는 모양인데 서방국가에서의 경험으로는 그게 역효과를 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몇 나라에서 시도해 본 결과 단순히 임금이나 물가 통제법만 통과한다고 인플레가 억제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어요. 자원의 궁핍상태에선 더 그렇지요.
-미국 달러화의 장기적 강세현상이 국제적으로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유럽 쪽에서는 미국의 고금리현상과 달러화의 강세현상이 모처럼 일고 있는 경제회복세를 역전시키는 게 아닌가고 불평이 많습니다.
▲나는 달러화가 실세 이상으로 너무 높게 평가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상품을 수출하기가 극히 어려워지고 있어요. 이건 한국 같은 나라엔 좋겠지요.
달러화의 강세는 미국이 통화의 안전한 피난처이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또 달러의 높은 수익성도 한 요소입니다. 달러의 수익성이 곧 사라지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상계정상의 달러화의 약세가 달러화의 평가절하를 가져올 것으로 봅니다.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60년대와 70년대에 비해 80년대의 세계가 훨씬 더 혼란하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국지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서방국가들의 국내정치도 더욱 더 시끄러워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교수는 이런 사회·정치현상을 경제적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혼합경제에 환멸>
▲전후 25년은 혼합경제 체제를 가진 국가들에 유별난 번영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디서나 혼합경제체제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70년대이래 그런 경향은 반전했어요. 오일위기를 겪었고, 역경이 밀려오자 혼합경제와 복지국가개념에 대한 환멸 같은 것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포클랜드전쟁이 혼합경제의 실패에서 연유되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사태나 이란-이라크전쟁도 경제적 원인이 작용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큰 문제는 미국과 소련이 세계를 전화 속에 쓸어 넣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핵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요인은 미국의 우위가 무너지고 미소간에 힘이 대등해졌다는 점입니다.
여하튼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가 번영기에 비해 늦은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각국의 정치제도가 그런 느린 속도의 경제성장과 공존할 수 있을까가 의문입니다.
자원 고갈이라든가, 공해문제 등의 제한요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절대적인 하락 현상을 보일 것으론 보지 않습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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