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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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남철씨는 좌선이 몸에 배어있다. 1시간쯤 좌선을 하고 있으면 삼매경에 들어가는 문이 트이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우주의 공간처럼 무한량한 바둑을 철저히 탐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이니 마음의청정을 찾기위해 나름대로의 수련이 필요했으리라.
9단이 된날 만난 조씨의 표정은 평소때 보았던 담담함 바로 그것이었다.
더듬더듬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하고 가끔 작은 소리로 껄껄웃는다. 마음 깊음이 느껴진다.
『김인9단·윤기현8단등 후진들이 애써 주었읍니다. 고맙고 바둑을 위해 전심전력해온 보람을 느낍니다.』
19세때 일본기원초단이 된후 42년만에, 8단이 된지 20년만에 입신의 경지에 다다른 조씨의 한평생은 바로 우리바둑의 역사다. 우리나라에 현대바둑의 씨를 뿌려 오늘날 4백만의 팬을 가지게된것은 바로 그의 젊음을 쏟은 바둑보급운동의 결실임은 누구나가 다아는 일이다.
해방직후에는 우리나라에 현대바둑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다. 노국수들의 순장바둑이 여전했고 기사들도 「내기꾼」쯤으로 통했다. 그러한 풍토에서 그는 「한성기원」「조선기원」「한국기원」등으로 기원을 발전시키면서 기사제도도 확립시켰다. 오늘날의 전문기사제도·입단제도·승단대회규정·신문타이틀전등이 모두 그의 정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또 현대바둑을 일반에 알리기 위해 기보를 만들어 신문에 게재하도록 한것도 조씨였다.
「바둑」「바돌」「바독」등으로 지역마다 다르게 쓰였던 것을 어학자들에게 물어 「바둑」으로 확정했다. 우리말 바둑용어도 많이 만들어 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만든 바둑용어중 「걸친다」는 「건다」, 「때린다」는 「따낸다」로 했어야 옳았읍니다. 널리 알려져 그대로 쓰이고 있으니 후회스럽군요.』
60년대 초까지 1인시대를 지냈던 조씨는 김인씨등 후진들이 두각을 나타냄에 따라 2선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바둑을 두어 정상을 다루는 일은 멀어졌지만 바둑을 보급하는 일에는 기사들을 대표해 앞강 서 왔다.
바둑강연, 지도에 힘썼고 「바둑개론」「바둑에 살다」등 20여권의 바둑관계 저서를 냈다.
아마추어 바둑인에게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해왔다.
『승부에 치중하는 바둑을 두지 마십시오. 승부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과정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그냥 삼켜버리면 맛을 알지 못하는것처럼 바둑도 한수 한수 생각하고 두어나가는데서 맛이생기는것이라고 조씨는 강조한다.
조씨는 아마추어들이 바쁜시간을 내어 바둑을 즐기고자할때 여러 판을 두려고 하지말라고 권한다.
30분·1시간·2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그동안에 꼭 한판만 두라는 것이다. 진미는 생각하는데 있음으로 승부를 짐짓 초월해 보라는것이다. 그러면 바둑이 한급이라도 늘고 무아지경의 기쁨도 맛볼수 있을것이라고 말한다.
조9단은 음력으로 10월21일이 회갑이다. 일생을 바쳐온 바둑에서 입신이된것이 갑년임으로해서 그의 기쁨은 클 것이다.
그가 앞을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후배들의 힘에 의해 영광을 안은 것은 더욱 흐뭇한 일이다.
또 그의 노력에 의해 조카 조치동이 바둑천하를 제패하고 있으니 그의 바둑인생은 후회없는 것이 되었다.
『입신이 된 것을 바둑의 보급과 바둑계의 발전을위해 더욱 애써 달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읍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건전한 오락으로 바둑을 더 널리 알리는것과 기사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아이디어도 내놓고 대외적으로 나서야할 일이 있으면 서슴지않고 일해보겠읍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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