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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초대받지 못한 설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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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만 해당된 일이 아니다. 9월 광주 김대중 컨벤션 센터 개관식도 설계자는 초청받지 못했다. 또 2003년 경복궁 흥례문 복원 기념식에도 복원을 주도한 도편수는 자리 하나 없어 목수들끼리 경복궁 한구석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청 여부의 의전 문제이기에 앞서 이처럼 설계자나 장인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뿌리깊게 깔려 있다.

박물관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장관이 바뀔 때마다 장관 취향에 따라 건물 세부 디자인에서부터 옥외 조경에 이르기까지 오락가락 바뀐 설계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조경을 담당한 서안조경의 정영선 대표는 "석탑이나 석등을 옥외 공간에 전시하는 방법에서부터 박물관 뜰에 동산을 만드는 일까지 조경 설계자의 뜻보다는 행정 관료의 의사가 우선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뛰어난 건축 작품을 기대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유럽 순방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 도시 경관이나 건축 형태가 선진국에 비해 뒤진다"고 지적함에 따라 건설교통부는 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문화 선진화는 이 같은 위원회 설치에 앞서 건축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지난해 뉴욕의 현대 미술관이 리모델링을 끝내고 재개관했을 때 설계자인 '요시오 다니구치가 설계한 9개의 미술관'이란 제목으로 두 달간 특집전시를 했다. 또 뉴욕 타임스도 다니구치의 프로필과 함께 그가 일본에 설계한 건물 등을 자세히 다뤘다. 건축 문화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건축 문화 선진화를 위해 설계자나 장인을 제대로 대접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묻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

신혜경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