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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을 떼면 세계경제가 출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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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8월 29일 1000선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타던 종합주가지수가 23.39포인트 급락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이 문제였다. 전날 그린스펀이 "부동산 가격 상승은 유동성 덕분이고, 최근 풍부해진 유동성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이 한국 증시에도 곧바로 악재로 작용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이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해석됐으며 이에 놀란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치운 것이다.

FRB 의장의 위력은 19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미국 경제는 10년 호황을 누리며 과열을 우려할 정도였다. 당연히 금리를 올려야 할 시점이었지만 오히려 그린스펀은 98년에만 금리를 세 번이나 낮췄다. 금리를 내려 미국 경기를 더 끌어올려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이 늘어나고,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그의 판단이 적중해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었고, 외환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세계 경제의 회복에 힘입어 미국 경제도 계속 순항할 수 있었다.

FRB 의장이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단면이다. FRB 의장의 한마디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 증시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고, 전세계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그린스펀이 달러 약세의 불가피성을 언급하자 달러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세계 외환시장이 출렁이기도 했다. 이처럼 FRB 의장의 말 한마디가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린스펀은 재임 기간 줄곧 시장에 충격을 덜 주기 위해 말을 아끼고, 애매모호한 화법을 구사했다. 내년 2월 1일 그린스펀에 이어 FRB 의장에 오르는 벤 버냉키의 일거수 일투족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FRB의 역할은 한국은행과 흡사하다. FRB는 경기가 둔화되고, 물가가 안정을 유지하면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낮춰 경기를 끌어올린다. 경기 활황으로 시중에 자금이 넘치고, 물가가 불안해지면 금리를 높이는 통화정책을 실행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즉각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소비가 위축돼 미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한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게 된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 투자자금이 고금리를 쫓아 미국으로 흘러가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인 콜금리의 인상 압박을 받게 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중국의 대미 수출도 같은 이유로 줄어드는데, 이 또한 한국에 영향을 미친다. 상당수의 한국 기업이 중국에 기계설비나 부품.중간재를 수출하고 있어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는 한국의 수출 감소로 이어진다. 삼성경제연구소 전영재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대미 수출 물량의 상당수가 소비재에 집중돼 있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미국 경기가 둔화되면 수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FRB가 연방기금금리를 2%포인트 내리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8%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수출이 1.9% 증가한다.

금융시장에서도 큰 변화가 생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미국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이는 곧 미국 증시와 연동성이 높은 한국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고금리를 쫓아 해외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흘러가면서 한국 증시는 더욱 어려움을 맞게 된다. 이처럼 미국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연쇄적으로 금리를 따라 올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거듭된 금리 인상으로 연방기금금리가 한국의 기준금리인 콜금리를 넘어서며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자 한은도 결국 11일에 콜금리를 연 3.25%에서 3.5%로 올렸다. 이는 국내 금융회사의 예금.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 개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금융연구원 임병철 금융시장팀장은 "미국의 금리가 한국보다 높으면 국내에 투자된 자금의 상당수가 미국 채권시장으로 옮겨가 환율변동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은의 금리 인상은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김준술 기자

자산 최대 540만 달러
벤 버냉키의 재테크는
펀드·국채 등 '안정형' 선호
개별기업 주식은 한주도 없어

미국 FRB 의장 내정자인 벤 버냉키(51)의 재테크 솜씨는 어느 정도 될까. CNN머니는 26일(현지시간) 현직과 차기 FRB 의장의 통화정책뿐 아니라 재산 규모와 투자 성향도 월가의 관심거리라며 상세히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버냉키와 그린스펀은 모두 올 초 FRB에 보유자산을 신고했다. 연봉 18만 달러를 받는 그린스펀의 재산은 약 420만 달러였다. 버냉키의 보유자산은 자산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최소 110만 달러에서 최대 540만 달러로 추산됐다고 CNN머니는 전했다.

지난 6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으로 발탁돼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버냉키는 FRB 이사로서 16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CEA 의장 연봉은 FRB 이사 보다 다소 적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오래 재직한 버냉키는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을 분석한 '대공황론'과 '인플레이션 목표제(targeting)'등을 출간해 인세 수입도 꾸준히 들어온다.

두 사람의 재테크 방식은 큰 차이를 보였다.

그린스펀의 투자 성향이 성장형(주식 투자)이라면 버냉키는 안전형(연금 투자)으로 구분된다.

버냉키는 미국 교원의 퇴직연금(TIAA-CREF)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버냉키는 "퇴직연금의 순자산 가치가 100만~500만 달러로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또 하이일드 뮤추얼펀드, 대형주 위주의 뮤추얼펀드, 퇴직연금 2종, 캐나다 국채, 저축계좌 에 투자했다. 또 두 명의 자녀를 위해 1만5000달러를 펀드에 가입했다. 버냉키는 개별 기업 주식에 전혀 투자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도 한때 주식에 손을 댔으나 지난해 7월 모두 매각했다.

그린스펀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미국 국채 300만 달러, 개별 기업 주식 80만 달러, 자신과 아내의 401K 퇴직연금 30만 달러 등으로 구성됐다. 그린스펀은 월마트.화이자.델몬트푸드 등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1987년 그린스펀이 FRB 의장에 취임할 당시 2000이던 다우지수는 최근 1만까지 뛰었다. 그린스펀은 주식시장을 살렸다는 명성과 함께 자신도 쏠쏠한 투자 차익을 챙겼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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