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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열하는「기술전쟁」…고급두뇌 없이 못이긴다|수요 못따르는 기술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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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기술입국」-. 이는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각국의 기술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정부가 내건 절박한 방향지표다. 70년대를 값싼 노동력이 수출을 뒷받침하던 시대라한다면 80년대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수출을 지배하는 시대 기술혁신을 통한 원가절감과 새상품개발 없이는 수출경쟁에서 이길수 없다는 것이 냉혹한 국제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선진각국이 전자·유전공학등 첨단과학을 앞세운 「기술전쟁」을 벌이고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고급기술 두뇌확보에 안간힘을 쏟고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란 하루아침에 축적될수는 없는것. 우리는 지난날 과학기술 교육분에 대한 인식부족과 투자소홀로 오늘 당장 고급기술 인력확보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있다. 과학기술교육, 무엇이 문제이며 대책은 없는가. 교육 및 산엄현장을 둘러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조명해 본다.

<인력현황>
전세계가 반도체산업등 첨단기술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기업들도 고급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피나는 전투를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최근의 호황때문만도, 기업 차원의 일만도 아니다.
값싼 노동력이 수출을 뒷받침하던 70년대와는 달리 이제는 기술혁신에 의한 원가절감등으로 국제경쟁력을 기르지 않고서는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수출국의 대열에 낄수 없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전은 국가적으로도 사활이 걸린 과제가 된 것이다.
이 분야에 뒤늦게 눈은 떳으나 그동안 길러낸 인력이 거의 없고 다른 나라보다 더 서둘러야하는 딱한 입장. 국내외로 열심히 손을 뻗치고 있으나 꼭 필요한 「질높은 인력」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A기업의 경우 올 하반기중 유전공학계 인력 40명이 당장 필요한데도 아직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른다. B기업은 20여명의 중견기술인력을 확보했으나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핵심리더를 구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업계쪽에서는 전자기술분야만도 오는 86년까지 대졸기술인력 3천6백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처가 조사한 바로는 석·박사급 고급인력부족이 장차 심각하리라는 전망이다.
오는 91년엔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과학자(석·박사)가 7만7천9백명인데 비해 현재와 같은 대학의 정원책정으로는 공급능력이 4만7천9백명에 불과한 실정(별표참조). 부족인원이 자그마치 3만여명이나 될것으로 보여 기업들은 더욱 애가 탄다.

<대학의 실태>
과학기술은 대체로 투자를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나야 그 성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바로 10년전에 효과적인 투자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오늘 쓸만한 과학기술자를 찾기힘든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일본정부가 최근 조사한 인구 l만명당 과학자수는 미국이 28명으로 가장 많고 일본 26명, 서독이 16명인데 비해 한국은 겨우 6명꼴.
10년뒤를 내다보지 못한 당연한 결과로 고급기술인력의 부족현상은 심각할 수 밖에 없다.
이대로 나간다면 부족현상이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과기처가 내다본 90년대의 인문계대 자연계간의 인력수급전망은 4대6. 대학의 정원책정도 가급적 이같은 전망을 감안해서 책정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교부가 해마다 조정하고있는 인문대 자연간의 립학정원비율은 81년이후부터 인문쪽의 구성비가 높아지기 시작, 현재는 55대45로 인력수급전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문교부당국자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인문대 자연계간의 학생구성비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가 6대4∼7대3으로 우리도 이같은 추세에 따른것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이공분야등 자연계대학이 인문 사회계 대학보다 시설비와 운영비가 훨씬 많이 든다는데 그 이유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자연계대학에는 막대한 양의 실험실습시설이 필요한데다 시설의 유지비등 사후관리비용까지 엄청나 이공대의 신설이나 시설확충을 기피하고있는 실정. 이같은 형평에서 이공계 학생수를 늘리고 싶어도 수용능력부족으로 늘릴 수가 없다.

<절름발이 교육>
교육현장을 둘러보면 우리 과학기술교육의 현장이 한심한 수준에 있음을 알수있다.
대학의 경우 졸업정원제 실시이후 학생수는 급격히 늘었으나 교수요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교수대 학생의 비율이 국립대 1대38, 사립대 1대56을 기록, 교수의 질은 고사하고 우선 양적인 면에서도 과학교육의 내실화가 어려운 실정에 있다.
중 고교의 경우도 평균 60명 이상으로 돼있는 현재의 학급규모로 볼 때 실험 실습을 절대로 필요로 하는 과학교육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교사들 가운데는 당초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가 후에 자격증을 딴 교사와 과목상치교사(A과목의 자격증을 가진교사가 B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중학교 27%, 고교 10%에 이르러 교사의 질도 문제가 되고있다.
또 초·중 ·고교의 실험 실습기재 보유율은 평균 62%선에 불과하고 과학교사의 24.9%가 「실험지도에 자신이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서울대 과학교육연구소조사).
그러나 실사 학급규모가 이상적으로 조절돼 교사대 학생의 비율이 훨씬 낮아지고 충분한 실습기재를 갖춘 뒤 우수한 교사가 확보됐다 하더라도 문제는 따로 남는다.
우수한 교사에 의한 훌륭한 실습교육이 대학입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K고교 박모교사(38)는 『고교에서 충실한 실험 실습위주의 과학교육을 한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학부모들이 「대학입시를 망쳐놓으려 한다」며 반발할 것』이라고 했다. 실험을 할 아까운 시간에 하나의 이론이라도 더 암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조사결과 고교생들의 43.4%가『실험을 거의 해본일이 없다』고 대답하는것이 당연한 결과일수밖에 없다. 서울T고교 이모교장은 『이론중심의 대학입시가 과학교육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실습기재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더라도 실습을 회피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오늘날 고교과학교육의 여건인 것이다.
이론중심의 과학교육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
문교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자연과학대의 실험 실습기재 보유율은 38%, 국립대는 28%에 불과하다(별표참조). 실험 실습이 절대로 필요한 용용과학분야도 비슷한 실정이라 했고 있는것마저 그동안 수리 유지비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낡은것 투성이라 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국립대학이 현재 보유하고있는 실습기재의 80%가 노후된 상태. 따라서 학생들의 3분의1정도만이 제대로 실험을 하고있다고 교수들은 말한다.
대학에 대한 지원은 어떤가.
문교부는 기초과학분야를 주로 연구하는 전국14개 대학연구소를 선정, 지난79년부터 중점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으나 지원규모가 늘기는 커녕 해마다 줄고 있다. 79년 5억9천만원이던 지원액수가 지난해엔 5억1천4백만원까지 줄었다가 올해 겨우 79년 수준으로 회복됐으며 이중 서울대의 경우는 79년의 3억9천만원에서 올해는 2억7천만원으로 줄었다.
우리 청소년들의 과학과목의 이론에 관한 학력은 결코 다른나라 청소년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최근 서울대사대 정연태교수등이 조사한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학생들의 과학학력 평균은 29.2(80점만점)로 일본(31.2)을 제외하고는 국제평균(19.6)은 물론 서독(23.7), 미국(21.6) 영국(21.3)보다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같은 문제를 놓고 측정한 점수임).
결국 그같은 능력을 교육이 뒷받침해 키워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그릇된 인식>
우리의 과학기술이 전반적으로 낙후돼 있는데에는 자연계보다 인문계를 선호하는 뿌리깊은 국민의식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
아직도 개개인의 가슴속에는 연구기술자를 장인으로 일컫던 유교의식이 잠재해 있고, 그 결과 대학에도 인문계쪽에 대체로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리고 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진학지도를 맡고있는 고교 교사들의 의견도 그렇지만 83년 서울대 입시결과를 봐도 인문계인 법대의 커트라인이 3백17점인데 비해 자연계는 평균 커트라인이 2백90점으로 인문계보다 낮았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자연과학대쪽은 학생들의 천시경향이 뚜렷하다. 지난 79년 계열별로 뽑힌 S대 학생들이 2학년에 진급하면서 학과신청을 냈을때 자연과학대의 기상학과는 신청자가 단한명도 없었으며 80∼82년에도 신청자가 2∼5명에 불과했다. 자연과학대의 식물학과 천문학과 지질학과등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게다가 과학을 하겠다고 나선쪽의 부담이 인문계보다 훨씬 무거운데도 문제가 있다.
등록금만 보더라도 83년 국립대학 1학년을 기준할때 연간 인문계 85만8천원, 자연계 96만원으로 자연계가 인문계보다 10만원정도 더 비싸다.
실험 실습비가 더 붙기 때문이다. 대학으로서도 학생들의 실험 실습을 위한 시설과 재료비용지원을 해야하기 때문에 사립대는 물론 국립대에서도 이공계 대학운영에 골머리를 앓고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일반의 잘못된 인식등은 고교생들의 의식조사에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오홍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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