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대통령 인기 떨어지면 … 어김없이 충돌했다, 당·청 잔혹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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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과 때맞춰 국정 운영기조를 바꾸라는 새누리당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함께 정권을 탄생시킨 청와대와 집권당이 서로를 불편해하며 공격하는 역사는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반복되고 있다. 당·청 갈등의 잔혹사다. 심지어 김영삼(YS)-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 임기 말 집권당을 탈당했다. 차기 대선에 불리하다고 느낀 여당이 요구해서다.

 YS는 5년차인 1997년 차남 김현철씨가 수사를 받으며 지지율이 하락하자 당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 총재로부터 탈당을 요구받았다. DJ 역시 임기 말인 2002년 세 아들 및 측근들의 비리 사건으로 당내에서 쇄신 요구가 이어지자 스스로 탈당했다. “정당 민주주의를 위해 당정 분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여당과 긴장 관계였다. 그는 임기 초반 DJ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해 구 민주당의 원성을 샀다. 스스로는 탈지역주의 정당을 명분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하지만 임기 3년차인 2005년 재·보선 패배, 당내 계파 갈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자 여야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4년차인 2006년엔 문재인(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려다 무산되는 곤욕도 치렀다.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민심 이반을 심각하게 여긴 여당이 반발한 탓이었다. 결국 대선을 앞둔 2007년 2월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 이어지며 당·청 갈등은 꼭짓점을 찍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탈당을 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됐지만 박근혜라는 강력한 대선 후보의 존재로 당과의 관계가 불편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파동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2010년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며 내상을 입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반대해서다. 당 지도부는 다수파인 친이계가 점하고 있었지만 이 균형도 4년차인 2011년 원내대표 경선 때 무너졌다. 친이계 핵심인 안경률 의원이 친박계의 지지를 얻은 중립 성향 황우여 의원에게 패하며 이 전 대통령은 당내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처럼 당·청 갈등은 특히 대선이나 총선을 앞둔 시점에 폭발하는 형태를 보였다. 대통령의 탈당이 대표적인 예다. 박 대통령은 임기 2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갈등이 표면화됐다는 점이 특이하다. 하지만 다음 총선이 겨우 1년 남았다는 점에서 과거의 패턴과 다르지 않다. 큰 선거를 1년 정도 남긴 시점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며 마치 수학 공식처럼 여당은 청와대와 각을 세워 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당·청 갈등은 ‘권력 셰어링(공유)’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의회와 권력을 나누고 의회의 도움이 있어야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5년 단임제하에서 청와대는 늘 조급해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의회에 자율권을 많이 줄수록 국정 운영이 원활해진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가영·현일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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