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군 43번 국도 옆 ‘성연교’ … 죽은 아들 기리는 아버지 사연 담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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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적지 전문가 박원연씨. 박씨는 전국에 있는 각종 기념비의 크기·모양·재질도 분석한다. [사진 박원연]

1969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43번 국도의 한 S자형 커브길. 포병 제195대대의 군용 차량이 훈련 중 이동하다 전복됐다. 이 사고로 차에 탑승했던 황성연 상병이 사망한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한걸음에 사고 현장으로 갔다. 그리고 자비를 들여 S자형 국도를 곧게 펴고 작은 다리를 넓히는 공사를 했다. 그 ‘죽음의 길’에선 더 이상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새로 만든 다리의 이름에 아들의 이름을 붙였다. ‘성연교’. 황 상병의 부대는 감사의 뜻으로 작은 비석을 만들었다. ‘아들 성연과 함께 이 다리를 나라에 바치노라’.

 박원연(55)씨는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비석으로 성연교 비석을 꼽았다. 그는 “아직도 인근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비석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며 “작은 비석이 황 상병의 부모와 부대, 마을 주민을 하나로 만드는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인터넷 솔루션 개발업체를 운영하는 박씨는 사적지(史跡地) 전문가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매 주말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전국의 독립유공자·군인·경찰·남북분단 관련 사적지를 찾아가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을 남긴다. 각종 기념비의 사진은 물론 GPS 정보와 비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무료로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사적지 정보 구축은 둘째 아들의 군입대가 계기가 됐다. 그는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후 둘째가 해병대에 입대했다”며 “아들과 함께 간 해병대 훈련소에서 해병대 7대 전적지 소개를 봤다. 전적지 탐방을 했더니 또 욕심이 나더라. 이후 육·해·공군 기념비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사적지 리스트도 정확한 위치 정보도 없었던 것. 박씨는 “대부분 지자체에서 현충 시설은 관리하지만 사적지는 관리 대상이 아니다”라며 “안타까웠다. 사적지의 정확한 위치 정보라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해 체계적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5년 동안 사적지 4938곳의 정보를 구축하고 5만 장 가까운 사진을 남겼다. 한 곳 한 곳 찾다 보니 박씨의 자료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 등 우리 근대사를 정리하는 방대한 결과물이 됐다.

 그는 “이제 목표로 한 사적지 4953곳 가운데 15곳 만을 남겨두고 있다”며 “앞으로 모은 자료를 주제별, 테마별로 분류해 지자체 등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활용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제 그만 돌아다니고 싶다는 그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해외에 있는 우리 사적지가 궁금하긴 해요. 중국 옌볜 지역 독립 유공자 사적지는 다 찾아내고 싶어요.”

곽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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