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양] '야노마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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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마모/나폴레옹 샤농 지음, 양은주 옮김/파스칼북스, 1만5천원

고전 반열의 저술 '야노마모'(원제 Yanomamo-the Fierce People)는 지적 호기심을 훌륭하게 채워줄 문화인류학 분야의 텍스트지만,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미션'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만하다. 그만큼 술술 읽힌다.

문자나 세련된 숫자 체계가 없이 활을 쏘며 살고, 따라서 석기시대 인류의 삶을 연상시키는 야노마모족을 찾아가는 여행은 영화 '미션'에서 묘사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원주민들의 위엄있는 삶과 다를 바 없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의 아마존 분지에 살고 있는 야노마모족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인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려볼 만한 또 다른 영화가 '부시 맨'. 본래 원주민들은 평화롭게 살아왔다는 것

. 그러나 비행기에서 떨어진 콜라병 하나에 티격대격하는 원주민들을 가볍게 다룬 상업영화가 '부시맨'인데, '야노마모'에 나타난 이 종족의 전투적인 일상과 삶은 그와 정반대의 이미지부터 보여준다.

그들은 스스로를 사납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야노마모 터버 와이테리", 즉 "야노마모는 사나운 사람들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야노마모족과 1960년대 이후 30년 넘도록 현지조사를 진행해온 저자 샤농(전 캘리포니아대 교수)이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한 마을에서는 성인남자들 25% 이상이 이웃 마을과의 전쟁에서 사망했다. 이 마을의 한 남자는 적의 남자 21명이나 살해했고, 15명 정도를 죽인 사람은 몇명이나 됐다.(28쪽)

싸움은 마을 내 분쟁의 경우 대부분 치정관계 등 여자문제로 티격대격하거나, 마을 사이의 전쟁은 라이벌 마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대부분이다.

저자가 묵던 한 마을에는 15개월 새 무려 25차례나 습격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지구촌의 현대국가들의 문명에 비춰 수천년 이상 뒤떨어진 종족, 게다가 전투적이기까지 한 종족인데, 왜 이들의 삶에 대한 정보가 중요할까.

책에는 그들을 미개하다고 규정하는 대목이 단 한 군데도 없다. 19세기 제국주의의 백인 우월주의 시선은 완전하게 자취를 감췄다. 그 점에서 진보적 인류학 저술이다.

외려 이 책은 열대 우림의 생물학적 다양성과 같은 차원에서 인간 종(種)의 문화적 다양성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다음은 사회생물학의 태두로 존경받는 에드워드 윌슨이 이 책에 바친 찬사다.

"이 놀라운 부족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심오하다. 그들의 문화는 값을 매길 수 없이 귀중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도 중요하다. 그들은 시간 속에 박제된 석기시대인들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도로 지적인 인간들이다. 야노마모족의 생활환경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사실 야노마모는 체질상 전투적이지만, 그러면서도 전쟁을 할 수 없이 치르는 필요악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아들인 이들은 자신의 마을과 삶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갈등상황 속에 노출된 셈이다. 그렇다면 인류 문화에서 전쟁과 폭력이 차지하는 구조적 역할을 성찰해볼 수 있는 훌륭한 저술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 '부시맨'이 가정하는 '평화로운 원주민들'이란 이미지는 알고 보면 서구문화가 만들어낸 가설. 루소의 '고귀한 야만인'이론에서 출발한 그 가설은 현재 허구로 판명된지 오래다. 이 책이 그런 가설에서 자유로운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자 샤농은 현재 기독교와 현대문명의 위협에 놓인 야노마모족 보호운동에 종사하고 있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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