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부모찾은 최영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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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2년만에 부모형제를 만난 것이 지금도 꿈처럼 여겨집니다.』 대구고아원에서 「김옥균」이란 성과 이름으로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란 최영환씨(40·운전기사·대구시동구효목1동191 민생주택9호)는 처남의 귀띔으로 가족을 찾게됐다.
최씨의 처남은 우연히 KBS-TV를 보다 「아들 영환이를 찾습니다」는 피킷을 든 이경순씨(67) 얼굴모습을 지켜보고 깜짝 놀랐다.
매형 영환씨의 모습을 쏙 빼 닮았기 때문이었다.
최씨의 처남은 대구에 사는 영환씨에게 다이얼을 돌렸고, 영환씨는 어머니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로 달려왔다.
부모의 얼굴·이름·고향조차도 기억 못하던 영환씨는 처음 아버지 최윤기씨(67·서울불광2동110의1)및 어머니 이씨와 대면했으나 한동안 서로 망설였다.
그러나 어머니 이씨가 영환씨의 어릴때 다친 왼쪽 눈썹위의 흉터와 뜨거운 방에서 자다 데인 엉덩이 흉터를 확인, 영환씨를 얼싸안았다.
더구나 영환씨와 함께 온 외아들 태우군(6)의 모습이 영환씨의 막내동생 경환씨(31·명성기업사원)와 그렇게도 닮을수 없었다. 『핏줄은 아무리 오래, 멀리 떨어져있어도 속일수 없음을 알았지요.』
영환씨는 5남1녀중 세째아들로 유일하게 부모형제와 헤어져 홀로 자라게됐다.
영환씨가 7살이 되던 51년 1·4후퇴때.
당시 아버지 최씨는 제2국민병으로 군에 가 영환씨는 어머니 이씨와 함께 서울귀산동에서 살다 피난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밤새도록 걸어 새벽녘 안양에 도착했다.
안양역전에서 모닥물을 피워 자녀들에게 아침밥을 지어 먹인 이씨는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뒤따라온 영환씨가 길을 잃고 말았다.
어머니 이씨는 큰 아들 명환씨(당시 13살)와 함께 영환씨를 찾아 안양역주변을 3일동안 헤매다 못 찾고 피난도 포기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졸지에 어머니를 놓친 영환씨는 그후 대구고아원에 맡겨졌다가 매질과 배고픔에 못 이겨 1년도 못돼 탈출, 지금의 동대구역 부근에서 신문팔이·구두닦기로 생계를 이었다.
영환씨는 돈을 푼푼이 모아 68년 운전기술을 배웠고 77년 김기출씨(34)를 만나 결혼, 1남1녀를 두고있다.
『6·25동란중 부모가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고 명절때면 제사를 지내기도 했읍니다….』
영환씨가 가장 서러웠던 일은 부인 김씨와 결혼할 당시. 부인 김씨 집의 반대를 무릅쓰고 절에서 냉수를 떠놓고 결혼식을 올리던 일이 지금도 영환씨의 가슴속에 잊혀질수 없다는것.
휴전후 집에 돌아온 아버지 최씨는 세째아들 영환씨를 찾아 봇짐을 지고 전국 고아원을 두루 뒤지기도했고, 영환씨의 생일때면 상을 차려놓기도 했다. 또 6·25의 와중에서 어린것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했다는 것이다.
32년만에 아들과 손자들을 한꺼번에 만난 영환씨 부모는 『이제는 여한이 없다』며 기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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