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노의 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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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슨 영문일까. 3년동안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던 필리핀의 「아키노」 전상원의원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암살됐다.
바로 어제 낮 2시 마닐라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키노」의원은 알려진대로 장기집권중인 「마르코스」대통령의 최대 정적. 망명하기 전 7년동안 옥고를 치렀고 병치료후 귀국한다는 조건 아래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에서 살아왔다.
최근 「아키노」의원은 귀국해서 반독재투쟁을 별이겠다는 결심을 굽혔다. 집권 18년째를 맞는「마르코TM」의 퇴임 움직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그의 암살을 목격한 기자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일부기자들은 기내에서 그를 연행한 보안요원이 직접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키노」를 저격하고 경비군인에게 사살된 한 청년은 과연 누구인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필리핀당국의 처사도 많은 의혹을 산다. 사건이 발생하고 몇시간이 지난 뒤에 공식발표가 나왔다. 그에 앞서「아키노」의원의 귀국을 거부하는 이유로 「저격위험」을 든것도 아리송하다.필 리핀은 지금 계엄령하에 있어 치안질서가 엄격한데도 그런 이유를 단 것은 무엇때문일까.
정치적 암살치고 동기와 배후가 확연히 밝혀진 일은 별로 없다. 정권 장악을 다투는 사이에선 특히 그렇다.
정치적 암살은 살인이라는 윤리적 측면의 부도덕성을 제쳐 놓고라도 매우 추악한 일이다.민주주의의 기본질서인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이다. 미국무성이「매우 비검한 사건」 이라고 매도한 것은 이해가 간다.
지난 2월의 미국무성 세계인권보고서는 필리핀이 『계엄령 아래 실시됐던 규제 조처들을 완화, 언론자유의 폭을 보다 넓혔다』고 밝혔다. 필리핀의 인권상황이 그런대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본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마르코스」 대통령은 심각한 정치적 궁지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에 따르면 「마르코스」대통령 자신도 지난 72년이래 8번의 암살 위협을 모면했다. 평화걱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개도국의 비극이다.
AFP통신 집계에 따르년 지난 10년간 국가지도자로서만 18명이 폭력에 의해 희생됐다. 대부분이 쿠데타에 의한 것이다. 정적과 요인까지 합치면 암살기도는 더욱 늘어난다.
73년9월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피살을 필두로 8l년의「사다트」 이집트대통령 ,82년의「제마옐」레바논대통령 당선자 등이 모두 폭력에 의해 희생됐다. 한국의도 79년 10·26사태를 경험했다.
미 국립의학원은 요인암살의 경우 「미국형」은 특이한 문화요인의 결과라고 말한다. 정신질환자가 많고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풍토가 한 원인이다.
그러나 개도국은 거의가 정치적 동기다. 정치수준을 높이자는 얘기는 그래서 결코 빈말이 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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