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장의 불행"…동정만으론 아무보탬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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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2세 소녀가장 윤숙양의 기사를 읽고 나서, 하느님 맙소사! 하는 소리가 저절로 한숨과 함께 나왔다. 아이도 너무 많이 낳았어, 하고 생각한 것도 솔직한 얘기다. 언제나 복지사회가 되려나하는 불만도 아울러 생겼다. 그러나 불우하고 갸륵한 윤숙양에의 애처로운 정은 그런 저런 생각을 불식했다.
당장 가 보아야지! 그러나 상계동이 서울의 동서남북의 어딜까? 재작년 초가을 어느 불우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동대문부근을 두시간이나 해맨적이 있어서, 집을 찾아나서기 전에 미리 탈진할 것 같다.
그때 절실히 느낀 일이지만, 사후에 가슴을 치고 슬퍼하느니, 미리 그 어린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하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인간의 생명은 어느 하나의 생명도 죄없이 불행해서는 안된다.
신문사가 상계동 보다 가까우니, 그리로 갔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작은 일하면서 과시한다는 오해를 받을까해서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이 무한이 아님을 절감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의 행위가 남이 볼세라 안볼세라 생각할 만큼 한가한 시간은 없을 것이다. 남이 보건 보지 않건 한치 틀림없이 똑 같다.
택시안은 화로속 같고, 중앙일보앞은 지하철공사로 차가 선채 한참동안 가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려서 걸었다. 윤숙양의 집을 찾아갔으면 고생이 어떠했을까 싶었다. 그 더위에! 그래서 생각난 것인데,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이름나는 것이 찜찜하고, 혹은 집이며, 신문사로 가자니… 하고 주저주저하다가 그만 때가 지나고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정은 다 한가지인 것이다.
불우하고 갸륵한 윤숙양을 누가 알고서야 외면하겠는가.
다만 생각만 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생각과 말은 아무리 많고 커도 행동이 없으면 한줌의 연기다.
그리고 악마도 천사같은 말은 할줄 안다. 그러니 말은 잡음이다.
행동만이 마음이며 말이며 진실이다. 남을 돕는 일은 쉬운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작은 도움도 부지런해야하고, 행위를 관철하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동정심에 있어 경계해야할 것은 제앞을 생각해야할 일이다. 동정하다가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형편이 된다면 본말전도가 아닌가.
中·고등학교에도 등록금을 못내는 학생이 한반에 몇명씩 있다는 말을 자식을 통해서 듣는다. 60명 학부모중에 10명이건 20명의 학부모가 한달에 1천원 이상을 모으면 1, 2명의 등록금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사람이 부담하면 벅차다. 남을 돕는데는 가장 가까운 불우하고 갸륵한 어린사람을 도와야한다.
한반의 급우가 되었다는 인연은 넓은 우주, 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인연이다.
그 인연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가정형편 때문에 학생이 학교에서 물러날 때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 죄도 없는 소년이 오로지 가정형편이 나빠서 당하는 그 좌절과 울분을 무엇으로 달래야할 것인가? 나이들만큼 들고 생각깨나 하며 살아 온 나도 애증과 정신적 방황에서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고 있지 않는가.
죄없는 불우소년들에게 무슨 염치로 해탈한 인격을 기대한단 말인가? 오늘날 소년범죄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한번 골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구나 말로는 쉽게 국가의 장래를 이어가는 2세들이라고 떠받들 듯이 한다. 그러나 사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 혹시 외면한 2세들은 없었던가. 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공든탑도 무너질 때가 있다. 하물며 공안들인 탑이 어찌 성하랴.

<한말숙>
◇약력 ▲31년 서울생 ▲55년 서울대 문리대졸 ▲59년 서울대 음대강사 ▲64년 제9회 현대문학상·69년 제1회 창작문학상수상 ▲대표작=작품짐『신화의 단애』『여수』『방황의 계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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