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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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지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20등, 30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설가 고(故)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 『쑥쓰러운 고백』(문학동네)에 실린 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에서.

소설 만큼이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읽히는 박완서 선생 산문의 묘미가 듬뿍 담겨 있는 글이다. 이 글의 맥락은 이렇다. 아침부터 우울한 감정기복을 겪던 선생이 버스를 타고 가다 마라톤 행렬을 만나 1등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만나길 고대하지만 꼴찌 행렬을 볼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실망한다. 하지만 꼴찌 중 한 명의 얼굴 표정을 보고는 이내 마음을 돌리게 된다. 복잡할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에누리 없이 경제적인 설명으로 공감의 울림을 자아내는 선생의 솜씨에 절로 미소 짓게 된다. 글 속의 꼴찌는 실은 살면서 지치고 낙담해 어디선가 위안을 얻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순위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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