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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제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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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절대왕정을 끌어내린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은 남성 패션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와 18세기 로코코 시대까지 프랑스 남성 귀족들은 무릎 길이의 반바지인 '퀼로트'에다 거추장스러운 웃옷으로 신분을 과시했다.

그러나 혁명 세력은 도시 민중의 길고 헐렁한 바지를 뜻하는 상퀼로트(sans-culotte)를 선택했다. 상퀼로트로 대표되는 민중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 등에서 전위부대로 나서 부르주아 혁명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상퀼로트는 혁명 주체 세력이던 과격 공화당파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됐다. 패션이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셈이다.

이 혁명파 패션은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을 거쳐 판탈롱(pantalon.신사복 바지의 원조)과 간편한 웃옷 차림으로 발전, 시민계급의 복장으로 정착됐다. 이어 부르주아 계급이 시민복장을 착용하고 현대적 양복으로 진화했다.

패션을 인류 문명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패션의 역사 속에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과 과학적 발견은 물론 그 시대의 관습과 문화 등이 녹아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양복의 탄생에는 혁명가 패션이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제복도 한 시대를 반영하는 패션의 영역이다. 제복의 색상과 디자인은 집단적 상징으로 소속원을 결속시키고 기강을 세우는 효과를 낸다. 고대 이집트 등에서 사제나 귀족이 집단의 명예를 나타내려고 착용하던 의상이 그 유래라는 설이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제복의 매력에 빠져본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군인과 경찰의 제복에서 풍기는 힘과 권위를 은근히 동경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창설 60주년을 맞아 새 제복을 선보였다. 대학 디자인연구소와 패션디자이너가 참여해 만든 '패션 제복'이라고 한다.

그동안 검정과 청색을 주로 해 어둡고 차가운 느낌을 주던 제복이 연한 회색과 아이보리색으로 바뀌었다. "멋스럽고 친근감을 주기 위해 패션 개념을 접목했다"는 설명이다.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이리라. 경찰의 패션 제복이 우리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읽게 해 준다.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