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와인 한잔도 음주운전' 과잉단속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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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5월 15일 밤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변호사인 데보라 볼턴(45)은 미국 워싱턴 시내 한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와인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을 먹은 뒤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 경찰에 제지당했다. 깜빡하고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렸기 때문이다.

"(불 안 켰다고)딱지를 뗄 건가요?"라며 웃는 볼턴에게 경찰은 근엄하게 "혹시 술 마셨나"고 물었다. 그녀는 "와인 한 잔뿐"이라 답했다. 이 정도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했다.

경찰은 그녀에게 측정기를 들이밀었다. 눈금은 0.03으로 나왔다. 볼턴은 당당한 목소리로 "가도 되죠?"라고 물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녀 손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은 0.01부터는 무조건 음주운전이라고 했다. 미 연방 정부의 음주운전 판정기준은 혈중 알코올농도 0.08이지만, 수도 워싱턴은 와인 한 잔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들이댔다.

경찰서로 끌려간 볼턴은 오전 4시15분까지 붙잡혀 있다 최고 몇 개월 징역이나 1년간 면허정지를 당할 수 있는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다. 풀려난 뒤 볼턴은 외진 곳에 차를 세워 놓고 45분간 울었다고 한다.

그녀처럼 혈중 알코올농도가 0.08 미만인데도 체포되는 워싱턴 시민은 매년 400명을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면허정지를 당하고 벌금을 내고 정신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기소를 면제받는다. 볼턴은 와인 한 잔으로 이런 벌을 받기는 억울하다며 법정 투쟁을 택했다. 5개월 만인 이달 초 그녀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네 차례나 법정에 출석하며 수천 달러의 돈을 날린 뒤였다. 이 사실이 지난주 워싱턴포스트 1면에 대서특필되면서 "경찰이 너무했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워싱턴시 의회는 18일 음주운전 기준을 혈중 알코올농도 0.05 이상으로 완화하는 개정법안을 통과시켰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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