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기의 자금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내경기가 오랜만에 호황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지표들이 발표되었다.이런 추세라면 내외수산업을 가릴것없이 하반기 이후의 자금수요는 점차 가속화될것이 분명하다. 경기회복과 대금수급의 조화라는 어려운 과제가 점차 새로운 문제로 부각될것이 예견된다.
정부의 이문제에 대한 생각은 다소 단선적이어서 비생산적 자금유통만 견제될수 있으면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적정규모의 자금공급은 가능하며 현행의 긴축도 계획대로 밀고나갈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 전제가 되는 몇가지 기본 조건이 갖추어질 때라야가능하다. 우선 비생산적 자금유통이나 대금순환의 누출이 아직도 현저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여러 누적된 요인과 비현실적인 금리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금융시장내지 자금시장의 위축과 불균형, 비정상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은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자금부족과 경영악화를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단자시장마저 억압적 시장정책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원활한 자금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
자금시강의 전반적인 위축은 설사그것이 긴축이라는 정책일표에는 기여할지 모르나 긴축이 노리는 또 다른 측면 즉 생산적 자금의 효율적 동원과 배분으로 연결되지 않을때는 여러 부작용이 없을수 없다.
그 가장 큰 부작용은 금융력이 미약한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으로 나타난다. 대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의 긴축장기화에 대비하는 여러 안전판을 강구해놓았고 특히 신종기업어음의 발행을 늘려 대금 비축에 노력해왔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금융긴축과 대기업의 자금단속이라는 이중의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긴축이 있을때마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결제.를 늦추어 긴축의 부담을 떠넘기고있으며 은행은 은행대로 자금부족을이유로 신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올 외면하는것이 관례였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로는 중소기업의 진성어음 이용에서 은행으로부터의 할인은 전체의 55%에 불과하고 여전히 24·4%라는 높은 비율이 사채시장 할인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의 어려운 중소기업자금사정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특히 최근에는 실명제의 본격화와함께 사채시장에 대한 감시가 늘어나면서 그나마 중소기업 어음은 최후의 보루인 사채시장에서조차 경원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비록 그것이 경제순환의 큰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해도 현실적으로 매우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될것이다.
경기의 호황국면 진입을 전적으로 안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음을 지나칠수 없으며 자금시장의 복잡하고 미묘한 주름살을 펼수있는 신축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의 자금난 심화는 긴축의 당연한 부산물이 될수 없으며 시급하고도 적절한 대책이 필요한 싯점이라하겠다.
은행과 단자에서 동시에 외면당하고 대기업조차 결제조건을 불리하게만들어갈 경우 결국은 사채시장, 그것도 가장 불리한 조건의 사채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현실은 조속히 개선돼야하며 이는 경기회복의 정착에도 불가결한 조건이 된다. 특히 명성사건이후 사채시장조차 거래가 격감하고 이자율이 폭등함에 따라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금정책의 적절한 미조정이 필요한 싯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