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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등산화 꺼내셔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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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강원도로 단풍 마중을 나갔었지요.

설악을 한껏 물들이고서 '숨가쁘게' 남하하고 있는 단풍과 마주쳤더랬습니다. 하루 25㎞의 속도라던가요. 얼마 후면 형이 사는 아파트 단지의 벚나무며 사무실 앞 은행나무도 곱게 물들겠지요.

만남의 벅찬 느낌을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아둔함은 끝내 사전을 찾게 만들더군요. '늦가을에 엽록소나 화청소가 변해 붉게 또는 누렇게 된 나뭇잎'이라…. 참으로 멋대가리없는 정의입니다. 늦가을이란 말만 와닿습니다. 이제 겨우 더위가 끝자락에서 떨어졌는데 벌써 만추라니요. 낙엽이 돼버린 단풍잎을 보면 그렇긴 한가 봅니다. 낼모레가 상강(霜降)이고 두 주 뒤면 입동(立冬)이네요.

몇 해 전인가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우리 단풍을 보고 읊었던 시가 생각납니다.

'서리 맞은 단풍, 봄꽃보다 아름다워라(霜葉紅於二月花)'. 만당(晩唐) 시인 두목(杜牧)의 시지요.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낸 삶의 황혼이 청춘보다 아름답다는 얘기겠지요. '스스로 몸들을 조아 남은 피를 뿜고 있다'는 이호우 시인의 시구는 그래서 더욱 무죄입니다.

H형!

단풍 아래서는 어쩔 수 없이 세월을 떠올리게 되나 봅니다. 새순을 피우고 열심히 잎을 맺어 온갖 애벌레를 키우고 이제는 열매를 맺어 새들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저 나무. 한 세월을 열심히 살아온 나무의 모습이 어찌 저리 화려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도 과연 그러한가요?

수분과 영양 공급이 끊긴 단풍잎들은 스스로 때를 알아서 하나 둘 떨어져 내립니다. 그들은 흙바닥에 누워 있다가 떨어지는 열매가 다치지 않도록 온몸으로 안아줍니다. 그 열매를 감싼 채 엄동의 시린 바람과 눈을 참으며 새봄을 맞겠죠.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넉넉합니까?

단풍에 취해 엉뚱한 이야기만 지껄였습니다. H형! 어서 채비를 차리십시오. 자칫 오는 단풍 마중이 아니라 가는 단풍 배웅이 될지 모르니까요. 어젯밤 한줄기 바람이 머리맡 창을 흔들고 지나갔습니다. 그 바람에 단풍이 우수수 떨어졌을까 봐 걱정입니다.

<인제> 글=성시윤 기자<copipi@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인제 연가리골 나들이

이제 전국의 산과 계곡은 단풍의 '불바다'다. 1년에 딱 한번 산을 찾는 사람도 등산화 끈을 조여 매는 때가 요즘이다. '불구경'을 가는 게다. 그래서 단풍이 고맙다. 단풍이 없다면 연례행사로라도 산을 찾기 힘든 사람이 많을 터이니.

단풍놀이 가는 김에 단풍만 보지 말고 숲도 보고 오면 좋겠다. 단풍 곱고 숲도 좋은 곳을 소개한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연가리골이다.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은 난리를 피해 숨어 살기 좋은 곳으로 강원도에서 '3둔4가리'를 꼽았다. 3둔은 강원도 홍천 내면의 살둔.월둔.달둔이요, 4가리는 내면과 인접한 인제군 기린면의 적가리.아침가리.연가리.명지가리(명지거리)다. '둔'은 농사 짓기 좋은 펑퍼짐한 산기슭이고, '가리'는 경작하고 살 만한 계곡 옆의 땅을 일컫는다.

시야를 넓혀 보면 3둔4가리는 설악산과 오대산 사이에 깃들어 있다. 서로 질세라 서둘러 단풍을 물들이면서도 단풍 곱기로 유명한 산들이니, 그 사이의 4가리 단풍 또한 곱지 않을 리 없다.

4가리 중에서도 연가리골은 오지에 속해 인적이 드물다. 아침부터 해질 녘까지 종일토록 연가리골의 속살을 더듬었지만 이날 골짜기에서 산행객을 보지 못했다. 들머리에 있는 산장지기 여인네, 그리고 멀리서 약초를 캐러 왔다 오후 늦게 산장 앞을 지나쳐 간 약초꾼이 이날 연가리골에서 만난 사람의 전부다. 연가리골의 시냇물은 진동계곡으로 모이는데, 진동계곡과 나란히 난 418번 지방도로에서 '연가리골' 이정표나 안내판을 볼 수 없으니 사람을 만나기란 더욱 어려울 수밖에.

418번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진동계곡을 건너 어렵사리 연가리골로 들어오니, 바닥에 쌓인 낙엽이 골짜기 초입부터 푹신하게 밟힌다. 몇 해째 쌓인 낙엽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길은 쑥과 뱀딸기로 덮여 있고, 다래 열매가 발에 차인다. 바람이 불 때면 길섶의 노란 산국이 하늘거린다.

산길은 의외로 폭이 넓고 경사도 완만하다. 옛적 이곳 산기슭에서 벌목한 나무를 옮기기 위해 다듬은 길이었을 게다. 길 옆으로는 화전민이 살았던 집터가 남아 있고, 심마니가 얼마 전 잠자고 간 듯한 움막 터도 눈에 띈다.

연가리골을 흐르는 맑디맑은 계류는 개울 곳곳에 소(沼)와 폭포를 남겨 놓았다. 폭포 옆에는 당단풍나무가 가을 햇살을 받고 섰다. 역광을 받으면 단풍잎들은 불을 밝힌 등(燈)처럼 반짝거린다. 그래서 단풍놀이는 아침 햇살이 비칠 때가 최고다.

숲 속의 나무는 가을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쪽동백나무와 국수나무 잎은 갈색으로 물들었고, 벚나무 잎에는 붉은 기운이 감돈다. 붉나무.뽕나무.생강나무.가래나무 등도 가을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무는 이름만큼 그 모습과 향기.특성이 각각 다릅니다. 나무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열심히 가꿈으로써 만물에 도움을 주죠. 이같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룹니다. 이게 숲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예요."

길벗 삼아 동행한 숲 해설가 박동산씨도 연가리골에 흠뻑 빠졌다. '유명산숲학교'(forestcampus.co.kr) 등에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많은 숲을 다녀 본 그인데도 연가리골에 대해 "참 좋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적요한 숲에 한참 있자니 연가리골의 물소리는 커져 갔고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다.

<인제> 글=성시윤 기자<copipi@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수도권에서 차 몰고 가는 길

양평 방향 6번 국도→ 용두교차로에서 좌회전→홍천.인제 방향 44번 국도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해 451번 지방도로(30.8㎞ 진행) →인제 방향 31번 국도(15.4㎞ 진행)→ 진방삼거리에서 우회전해 418번 지방도로 → 진방삼거리에서 13.8㎞ 달려 주차한 뒤 도로 우측 진동계곡으로 내려오면 연가리골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나타남(물이 많으면 징검다리를 건너기 어려움). 또는 진방삼거리에서부터 15㎞를 와서 반사경이 세워져 있는 커브 구간 공터에 주차하고, 진동계곡 쪽으로 내려가도 됨.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음을 감안할 것. 연가리골에 들어가면 휴대전화 불통.

■ 대중교통

서울 상봉터미널 또는 동서울터미널에서 홍천행 버스 → 홍천에서 인제 현리행 버스 → 현리에서 진동행 버스

■ 숙소

연가리 맑은터(017-380-2160.www.hayanjip.co.kr). 숙박료는 2인 기준 4만원이며, 1인 추가시 5000원을 더 냄. 예약 필수.

■ 여행 상품

승우여행사(02-720-8311.www.swtour.co.kr). 11월 초까지 매 주말에 당일 일정으로 연가리골에 다녀오는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음. 서울 출발.

오색 물결 타고 내려가는 축제

동두천 소요산 단풍축제(10월 16일~11월 4일)

'경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아름다운 산.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원효폭포를 지나면 정상으로 뻗은 두 갈래 길을 만난다. 단풍을 즐기려면 왼쪽을 택하는 것이 '정석'이다. 3번 국도를 타고 가다 경기도 동두천시를 지나 5㎞ 정도 달리다 소요동에서 우회전하면 주차장이 나온다. 축제 기간에는 한.미 합동 관악음악회, 산사음악회 등 풍성한 행사가 매주 토요일 야외음악당에서 열린다. 소요산 관리사무소 031-860-2065.

보은 속리산 단풍축제(10월 21~23일)

긴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단풍 명소다. 세심정을 거쳐 문장대까지 이르는 등산로에 자생 수종인 단풍나무.소나무.참나무가 알록달록 아름다운 터널을 만들고 있다. 벌써 올해로 열 번째를 맞은 '속리산 단풍가요제'(22일)부터 '천황봉 산신제'(23일)까지 볼거리도 푸짐하다. 드럼 세탁기 등 경품이 걸려 있는 '충북 알프스 등반대회'도 22일 열린다. 경부고속도로 옥천IC로 나가 37번 국도를 50㎞ 정도 달리면 국립공원주차장에 닿을 수 있다. 보은군청 043-540-3392.

완주 대둔산축제(10월 26~28일)

정상인 마천대가 878m인 대둔산은 결코 높고 산이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깎아지른 절벽이 많아 가을이면 형형색색 단풍과 어울려 진경을 연출한다. 정상 부근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가며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축제 기간에 위령예술제와 마당극 '콩쥐 팥쥐'(이상 27일) 등도 열린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추부 IC에서 나가 17번 국도를 타고 전주방향으로 25분 정도 가면 주차장에 닿는다. 대둔산 관리사무소 063-240-4561.

장성 백암산 백암단풍축제(10월 28~30일)

'조선 팔경' 중 하나. 특히 백양사 비자나무숲을 비롯, 단풍이 아름답다. 이곳의 단풍은 갓난아기 손바닥 크기의 잎이 많아 '애기 단풍'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양사에서 출발, 학바위로 가는 길과 운문암으로 가는 모두 단풍 구경에 좋다. '흥부네 박 터졌네' 같은 마당극 공연부터 '단풍 캐릭터 분장 대회' 등 다양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IC로 나가 1번 국도를 타고 8㎞ 정도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장성군청 061-390-7221.

정리=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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