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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에 대한 네 가지 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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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김회룡]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최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학술회의에서 미국의 중량급 전략 전문가들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갈등에 대해 개탄했다. 전략가들은 동북아에서 미국에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그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이 불편한 관계를 타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략 정책 분야 권위자는 이렇게 우려했다. “지금 상태가 한·일 관계의 항구적인 ‘뉴노멀(new normal)’인 것은 아닐까.”

 지금은 한·일 관계에서 나쁜 시기라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양국 지도자들은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이들이 다자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나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만나면 서로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이 아무리 나쁘게 보인다 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한·일 관계에서 놀라운 점이 있다. 역사적·감정적 사안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실용적인 협력을 지난 50여 년간 유지하는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서울과 도쿄(東京)의 관계를 살펴보면 마찰이 있었던 기간보다 정상적인 기간이 훨씬 길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74년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기도를 둘러싼 저점(低點)도 있었지만 이들 저점은 정상적인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그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서울과 도쿄의 관계는 왜 여러 번 악화됐다가 또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할까. 마치 암기한 듯한 한국인들의 대답은 “일본인들은 과거에 대해 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대답은 “한국인들은 완고하며 과거를 잊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일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네 가지 대답 혹은 ‘이론’을 제기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한 가지 관점은 한·일 마찰의 핵심은 정체성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반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면 한국의 양대 국경일인 삼일절과 광복절은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한국 애국주의의 투쟁을 명시적으로 기념한다. 미국에서 7월 4일 독립기념일은 반영(反英)을 위한 휴일로 자리매김돼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일본은 아시아에 있는 핵심 민주주의 동맹국이지만 한국인들은 일본을 동맹이 아니라 잠재적인 적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관점은 한·일 마찰이 정체성이 아니라 국내 정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즉 양국 간의 마찰기는 국내 선거 주기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선거철에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은 편리한 공격 대상이 필요하다. 일본에 대해 단호한 태도로 나오거나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을 정치인들이 ‘안전’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역으로 일본이나 한국의 정치인들이 상대편 국가에 대해 유화적으로 보이면 국내에서 위험하다. 얻을 게 별로 없다.

 세 번째 이론은 한·일 마찰이 정체성이나 국내 정치와 연계된 것이 아니라 협상 전술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한국인들(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역사 카드’를 지렛대처럼 사용해 다른 사안에서 일본의 양보를 이끌어내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한 일본인 학자가 내게 던진 질문은 이런 사고방식의 핵심을 포착한다. “만약 일본의 경제가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나라 수준이라면 과연 이들 나라가 그토록 오래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중시했을까.”

 네 번째 한·일 관계 이론은 양국이 처한 외부의 구조적인 요인에 집중한다. 문제는 정체성·정치·협상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외부 안보의 위협 정도다. 북한의 위협이 두드러지거나 미국의 방어 의지가 약해 양국이 ‘안보 자원이 부족한(security-scarce)’ 환경에 처하면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가 양국 관계를 저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위협의 정도가 약하거나 미국의 방어 의지가 강한 ‘안보 자원이 풍족한(security-rich)’ 환경에서는 양국이 역사 문제로 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중 어떤 이론이 정확한 것일까. 양국 관계가 붕괴할 때마다 이들 요소는 그때그때 다르게 조합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아베 총리, 오바마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에게 말한다면 ‘위안부’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베 총리에게 말한다면 단지 박 대통령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고 난 다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미국이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동맹국들인 한·일 양국에 그저 “과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세요”라 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미·일 삼국 정부가 인정하는 것보다 한·일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이 복잡성을 이해하는 게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잘 기념하는 핵심적인 열쇠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