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차기 한참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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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과 나는 피난민 수용소를 찾았다. 대통령이 들어서자 아이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영양상태가 좋지않아 아이들 얼굴은 부기로 떠있었지만 눈빛만은 총명하게 반짝였다.텐트 한구석에서 한 어린이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있는 것을 본 대통령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제기를 만들고 있군. 이 할아버지가 도와줄까?』 대통령이 묻자 어린이는『나혼자 만들수있어요』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혼자서 만들수 있다니 장하구먼. 뭐든지 혼자할수있는건 남의 도움을 받지말아요』 하고는 어린이들이 제기를 차는것을 구경했다.
9월8일.
대통령은 경주에 갈 예정이었으나 구름이 잔뜩 껴 떠나지 못했다.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에게 보낼 편지를 초잡다가 저녁때는 비행단에 가서 브리핑을 들었다.
미국인들은 요즘 우리쪽의 어려움을 별로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대통령은 느끼고있다. 포항과 경주지구의 한국군에 대한 지원조치도 거의 없고 하늘에서 지원기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미군은 새병력을 취약지구에 투입할 생각은 않고 전선만 단축하려 드는 것같다.
어젯밤에도 수송선 4척분의 병력이 입항했지만 모조리 낙동강지역에 예비병력으로 배치됐다. 예비병력이라곤 없는 우리 아이들은 공격을 받으면 24시간 쉴새없이 싸워야 하는데….
대통령도 이젠 필사적이다. 한국군은 맡은 책임이상으로 열심히 싸우고 싶은데 미국쪽에선 제대로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면 무기를 내줄수 없다고 고집하니 야단이다. 총없이는적군부대와 싸우기는 커녕 공비 한명 제대로 잡을수 없는데 말이다.
비행단에서 브리핑을 받고난뒤 대통령은「무초」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가만히 앉아서 적군이 쳐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지 않소. 그 사이 적은 이쪽의 가장 취약한 곳이 어딘가를 알아내서 집중공격해 옵니다.
왜 우리도 적과 같이 밀고나가 싸우지않소. 그렇게하면 설사 다시 퇴각하게 되더라도 적군은 우리가 다음엔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해할것 아니오.
지금같은 전술로는 유엔군이 계속 피해를 볼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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