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강정구와 한국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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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런 소란을 진정시키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엄존하는 국가보안법으로 그를 사법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화해의 '시대정신'을 내세워 정치적으로 온건하게 풀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주장을 공론장에서 학문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라 본다. 만약 강 교수의 논변이 튼실하다면 아무리 실정법으로 억눌러도 조만간 되살아날 것이고, 그의 주장이 부실하다면 아무리 선전.선동한다 해도 이윽고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통일전쟁이고 미국이 우리의 주적이며 맥아더는 우리의 원수'라는 원색적 주장을 펴면서 강 교수는 이것이 사실에 기초하며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념을 개입시키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과 가치판단의 이분법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 자체가 강 교수가 그렇게도 경멸하는 부르주아 학문의 전형적 특성이다. 사실과 가치의 경계는 자연과학에서조차 선명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이 과학학(科學學)의 상식이 된 지 오래됐다. 인간의 실천적 삶과 관련된 사회과학과 역사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강 교수의 입론은 학문이론의 기초에 대한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그는 사실과 가치판단을 어지럽게 뒤섞음으로써 이런 이분법을 곧바로 부인하는 자가당착을 범한다.

학문의 객관성은 사실의 소리를 최대한 경청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어 해석된 사실을 반례(反例) 앞에 검증하고 비판함으로써 학문의 객관성이 달성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6.25를 비롯한 한국현대사에 대한 강 교수의 논변은 난폭할 정도로 도식적이고 단정적이다.

예컨대 미국이 분단의 책임을 져야 하며 미군은 점령군인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그의 논지는 일면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이다. 38선 자체가 미.소의 합의에 의해 그어졌고 미.소가 공히 국제정치적 고려에 의해 남북을 후견했기 때문이다. 남북 사이의 전쟁이 "역사적으로 필연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주장도 특정한 역사관에 사실을 꿰어맞춘 것이다. 1949년 이후 38선 인근에 충돌이 잦아들고 남한 내부가 안정돼 가고 있었으므로 북의 군사적 모험주의 외에는 전면전이 발발할 결정적 이유가 없었다.

6.25의 내전적 성격을 일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현실은 한국 사회의 내부갈등이 관리 가능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갈등을 전쟁으로 폭발시켜 분단을 돌파하고자 한 시도가 엄중히 규탄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강 교수 말대로 맥아더가 전쟁광이라면 김일성에 대한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까?

이런 식의 왜곡은 강 교수 논리에 특유한 편파성의 징후에 불과하다. 승패가 완전히 갈린 남북의 체제경쟁사를 통한 해방전후사 돌아보기를 '몰역사적 결과론'으로 폄하하는 그의 입장이야말로 몰역사적이다. 처참한 실패로 전 인민을 돌이킬 수 없는 도탄에 빠뜨린 체제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에 넘치는 시민들이 활보하는 체제의 대비보다 더 준엄한 역사의 선고는 없다. 국가체제 정통성은 궁극적으로 치세의 결과에 의해 판단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이미 그 일면성이 논박돼 버린 수정주의 사관을 단순 재생산하고 있는 강 교수의 존재 자체가 역설적으로 우리 학문의 다양성을 입증한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힘이다. 강 교수에 대한 처벌은 전쟁의 폐허 위에 우리가 이룩한 한국민주주의의 찬란한 성취에 걸맞지 않은 일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