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50년 집권 걱정" … 원자바오 "역사 이치 그리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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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서울숲 행사에 참석한 뒤 작별의 포옹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후진타오와의 정상회담 막후=나는 2010년 5월 1일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상하이에서 후진타오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이 시작되자 후진타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자리에서 천안함 침몰 사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표합니다.”

 당시 북한은 천안함 침몰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정상회담 의제가 아니었던 천안함 폭침을 후진타오가 먼저 거론하면서 조의를 표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5월 28일 제주도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원자바오 총리를 청와대에서 만났다. 어뢰 잔해 사진과 북한이 제작한 어뢰 설계도 사진을 보여주며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설명했다. 원자바오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누구도 비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을 지나치게 궁지에 몰아넣으면 한반도 정세가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자식도 늘 들어주기만 하면 나쁜 버릇을 영영 못 고칩니다. 북한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중국이 인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했다. 중국은 천안함 폭침의 유엔 안보리 상정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설득 끝에 안보리 상정은 받아들였지만 결의안 채택에는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 와중에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나는 후진타오에게 말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십시오.”

 “천안함 사태는 중·한 양자 사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한발 물러서는 중국의 태도를 참을 수 없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정상 간의 외교에서 쓰지 않는 강한 표현이었다. 후진타오는 당황한 듯 배석한 사람들을 돌아봤다. 내 말의 의미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중국 측 통역에게 재차 설명을 들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회담이 끝나자 후진타오는 내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이 대통령 말씀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건이 잘 해결되리라 봅니다.”

 나는 북한 문제로 중국과 의견이 충돌할 때 그저 부탁만 해서는 안 되며, 필요하면 강한 어조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관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진타오에 통일한국을 얘기하다=2012년 1월 9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국빈만찬 자리였다. 후진타오는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있지만 중국 인민의 생활 수준과 복지 수준은 아직도 낮다고 털어놨다. 나는 “통일이 되면 한·중 양국은 1200㎞(1300㎞인데 당시 잘못 알고 발언)의 국경을 마주하는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됩니다”고 했다.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중국에서는 금기시되는 내용이다. 나는 이어 “한반도 통일 후 미군은 주둔하고 있는 위치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통일 한국은 중국의 입장을 배려할 것이란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후진타오는 별다른 반박 없이 듣고 있었다.

 원자바오 총리는 회담을 마친 뒤 댜오위타이 만찬에서 “저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김정은)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 했다. 당시는 북한이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을 서두르면서 대남 비방에 몰두할 때였다. 나는 “우리는 늙고 은퇴하는데 북한은 젊은 사람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50~60년은 더 집권할 텐데 참으로 걱정입니다”고 했다. 원자바오는 “그렇지만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북한의 장래를 두고 ‘그리 오래 참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권호·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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