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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서봉수와 72번째 타이틀전서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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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76년 제11기 왕위전 도전 1국에서 서봉수 왕위(당시 5단.왼쪽)가 조훈현 6단과 대국하고 있다.

369번째의 맞대결-.

 26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시니어 국기전 결승에서 조훈현(62) 9단이 서봉수(62) 9단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통산 전적에서도 조 9단이 250승 119패를 기록했다. 타이틀전으로는 72번째 대국이었다.

 두 기사는 1972년 처음 만났다. 기사실에서의 연습바둑에서다. 프로들은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점심 값 정도의 돈을 걸고 초속기 바둑을 두곤 했다. 서봉수도 일본에서 돌아온 조훈현의 감각을 배우기 위해 틈만 나면 두었다. 많이도 졌다.

 74년 제6기 명인전에서 조훈현은 명인 서봉수에게 도전했다. 첫 공식 대국이었다. 다들 조훈현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서봉수는 3 대 1로 승리했고, 이후 기사실에서 두 사람의 연습대국은 사라졌다.

 두 기사의 대결은 언제나 바둑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76년 서봉수는 명인과 왕위를 가진 2관왕이었다. 조훈현은 76년엔 왕위를, 78년엔 명인을 빼앗았다. 한국 바둑 최초의 전관왕(全冠王·모든 타이틀을 획득)이 됐다. 하지만 서봉수는 79년에 명인을 다시 찾았다.

 조훈현은 81년, 85년에도 전관왕의 위업을 이루었으나 서봉수는 끊임없이 도전했고 또 일어섰다. 조훈현은 타이틀 도전기의 절반을 서봉수와 두었다. 2인자 서봉수에게 팬들은 환호했다.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그의 근성이 팬들을 열광시켰다. 서봉수는 잡초바둑, 혹은 된장바둑으로 불렸다.

 88년에 들어서야 조·서 대결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유창혁(49) 9단과 이창호(40) 9단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두 기사는 순식간에 서봉수의 자리를 앗아갔다. 조·서 대결은 조훈현·이창호 사제 대결로 옮아갔고 조훈현은 권좌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바둑계는 기억한다. 두 기사의 재능과 승부만큼 한국 바둑의 수준을 높인 사건은 없다는 것을…. 다음은 서봉수의 말이다. “조훈현은 뛰어난 사람입니다. 한국 바둑계는 그에게 많이 배웠지요. 물론 제가 가장 많이 배웠습니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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