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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가 가득한 이 시대의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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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맷집이 좋아야 살아남는다.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요즘 쏟아지는 구타와 가혹행위 기사를 접하면서, 또 보도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28일엔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던 72세 노인이 17시간 넘게 묶여 있다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고 인권위가 발표했다.

 튼튼하게 입대한 청년을 링거 주사를 놔가며 때려 세상을 떠나게 하는가 하면 어린이가 교사의 펀치를 맞고 쓰러지는 폐쇄회로TV(CCTV)도 잇따라 공개됐다.

 ‘생애주기별 구타’라 할 만큼 다양한 연령층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은 전부 삶의 터전에서 일어났다. 하루의 상당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서 도망도 못 가고 당했다.

 뭔가를 바로잡기 위해 이른바 ‘훈육’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가해자의 항변이 나온 점도 비슷하다.

 먼저 공개된 인천 송도 어린이집 영상(교사가 오른손을 힘껏 휘둘러 맞은 아이가 날아가는 모습)이 타격의 강도는 훨씬 세 보였다.

 그러나 더 충격을 준 건 어제(28일)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부평 어린이집 영상이다. 선생님 앉은키도 안 돼 보이는 아이가 교사 앞으로 다가설 때 주춤주춤하는 모습, 라이트 스트레이트성 구타를 당해 엉덩방아를 찧은 뒤 곧바로 몸을 가다듬는 자세에서 폭력이 일상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학대 당한 아이가 14명이라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4년 전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오모 교사가 때릴 때마다 아이들이 장풍에 맞은 듯 나가떨어졌다는 이른바 ‘오장풍’ 사건이 파문을 일으켰을 때 이젠 체벌이 사라질 것 같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데 유치원도 아닌 어린이집에서 체벌이 일상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체벌의 역사는 길다. 어떤 이는 “배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체벌 정당성의 근거로 제시한다. 한때 구타가 심했던 서양은 일찌감치 문화가 바뀌었지만 우리나라에선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에 호소해 학업에 정진케 하고 비행을 교정한다”는 논리가 최근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사랑의 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진짜 ‘사랑의 매’가 많다. 1810원짜리 중국산 대나무 ‘사랑의 매’부터 1만4250원짜리 수공예 싸리나무 제품도 있다. 이용 후기도 달려 있다.

 파는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체벌을 통한 훈육의 시대는 지났다. “교육을 위해선 때릴 수도 있다”는 마음을 아예 지우지 않는 한 각종 어린이집 대책이 별 소용이 없을 거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을 집에서 때리는 것”이라는 어린이집 원장의 얘기는 상당히 설득력 있다.

 쏟아지는 졸속 대책도 의문이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교사들을 불러 ‘학대 방지 교육’을 한다. CCTV 설치가 모자라 생중계까지 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선생님 모습을 아빠도 삼촌도 라이브로 보는 게 필요할까. 사실 ‘사랑의 매’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관련 당국에 선물하고 싶다.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