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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노래 자꾸 부르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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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준현
김준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겸 경제에디터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아도 자주 들으면 짜증나게 마련. 순전히 개인적 이유지만, 이런 ‘짜증 유발 꽃노래 리스트’에 단어 하나를 추가했다. ‘창조경제’다.

 창조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행위’다. 그러니 창조경제는 ‘상품·서비스·제도 등 경제와 관련해 세상에 없었던 뭔가를 하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알겠다. 내가 이 단어에 짜증이 나는 이유를. 내 평생 남이 하지 못한 걸 처음으로 만들어 낸 기억은 없다. 오죽하면 신문기자로서의 모토도 ‘하늘 아래 새로운 기사 없다’가 아니었던가. 이럴진대 경제행위에 있어 창조는 언감생심이다. 내가 잘 못하는 걸 자꾸 들으니 자격지심에서 짜증이 난 것이리라. “당신들은 왜 아이폰처럼 창조적 제품을 내놓지 못했느냐”고 윽박지르면 삼성전자가 기분 안 좋은 것과 똑같은 이치다.

 내가 창조경제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삼성전자가 애플과 달리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 머무르는 건 ‘창조하는 행위’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닐까. 교육을 통해서든, 경험을 통해서든 창조를 이뤄낼 토양, 그런 DNA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악착같이 일하고 패기로 도전해 최빈국 한국을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키웠다. 하지만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배운 적도 없다. 그러면 40대인 나는? 10대, 20대의 우리 아이들은? 크게 차이가 없지 않을까. 30년 전 내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정석수학’ ‘성문영어’로 공부한다. 공부 방식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암기교육이 아닌 개념교육, 지식교육이 아닌 전인교육도 수십 년째 구호일 뿐이다.

 비록 우리가 잘 모르고, 잘 하지도 못하지만 창조경제는 숙명이다. 그 길이 아니면 생존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이해한다. 대통령은 어제(27일) 광주로 갔다. 현대차그룹이 만든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둘러보며 창조경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이런 세리머니도 필요하다. 더 거창하게 해도 좋다. 다만 기업이 할 일은 그네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고 대통령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앞으로 3년 남았다. 그러니 ‘제1차 창조경제 3개년 계획’을 만들자. 2차, 3차 계획도 만들어 차기 정부가 로드맵을 실천하도록 압박하자. 박정희 대통령의 5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제1차 창조경제 3개년 계획의 핵심은 창조교육이었으면 좋겠다. 교육시스템과 내용에 ‘창조 DNA’를 심는 것이다. 그런다고 창조경제를 이룬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확률이 조금은 높아지지 않겠는가. 쉽지 않겠지만 지금 창조경제에 쏟는 노력과 자금이라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요즘 복고풍이 유행이라니 하나 더 제언하고 싶다. 나 어릴 때처럼 물자절약, 자연보호, 어른공경과 같은 가치관 교육을 확 강화하면 안 되나. 요즘 아이들, 이런 거 너무 모르고 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올드맨이 됐나 보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