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터동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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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남편은 낚시꾼이다. 아니, 자칭 조사라신다. 월척이니 좌대니 떡밥이니해서 이제 조사의 경지운운하는 낚시용어들에도 한결 익숙해졌다.
늦잠꾸러기인 그이가 휴일 새벽이면 언제 낚시도구를 챙겨놓았는지 잠을 깨고보면 머리맡엔 영락없는 메모지한장.
『여보, 미안미안. 착하지』를 뎅그렁 남기고 줄행랑친후였다.
옥신각신도 해봤으나 말려서는 안될문제인것같아 차라리 한번 따라나서 보기로 결심했다.
몇차례 낚시터에서 함께 하루를 보내며 호젓한 자연의 정취에 자칫 낚시의 진수에 빠져들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봐, 햇볕 따갑고, 뭐 이건 별 흥미가 없다고. 밤낚시는 말이야, 한결 운치가 있다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애지중지하던 첫애가 겨우 기어다닐 때여서 도대체 밤에 따라나설 묘안이 없던터라 한번은 친정 어머니께 오늘 저녁은 회사의 부부동반 모임에 초대되어서…하고 아기를 떠맡기곤 따라 나섰던것이다.
한데, 이게 웬 진짜 벼락일까.
초저녁까지 달빛마저 휘황하게 내리비치며 낭만 넘치던 잔잔한호수위에 금방 비구름이 일더니, 바로 몇미터 앞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칠흑같은 밤하늘에 번갯불이 번쩍번쩍 터지기 시작하면서 공포감이 전신을 엄습해 왔다.
지금쯤 엄마 찾아 울고있을지도 모를 친정에 맡겨둔 아기얼굴이 어른거리기 시작했고, 어마니께 거짓 밀씀드린 그 죄값이 이제 내리나보다 하고 한없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두둑 굵은빗방울.
그이의 다리 한쪽만 부둥켜 안은채 우의고 뭐고 그냥 오들오들 떨뿐별생각 가눌수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번갯불이 번쩍거릴 때마다 겁이 나 피한다는 것이고 근처에 세워둔 트럭밑이었다.
조금후 그이가 비범벅이 된채 『그 속은 더위험하니 빨리 나오라』고 고함쳤다.
『부부는 남이란 말이야? 남편만 두고 혼자 도망가다니.』
비가 잠잠해지고 그이가 농담반으로 웃으며 한말이다.
이제는 7살이 된 딸애와 가끔 낚싯길에 나서는 남편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웃음이 나온다.

<서울성북구정능4동266의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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