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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피싱'알고도 오리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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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피싱은 금융회사 사이트를 직접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해킹보다 알아채기 어렵다. 기술적으로 뾰족한 방지책도 없다고 한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금융 소비자의 경각심을 일깨워 예방토록 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은 피싱 피해 사실을 한 달 이상 감추고 있었다. 본지 보도가 나간 17일에야 뒤늦게 '전자금융 사기경보 발령'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피싱이 개입된 금융사기가 지난달부터 모두 5건 발생했고, 피해금액은 1억6986만원에 이른다.

늑장 대응에 대한 금감원의 설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경찰이 수사 중인데 일반에 알리면 범인을 잡기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했다"는 것이다. 범인을 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금감원의 역할은 따로 있다.

피싱은 이미 인터넷에서 활개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 소중한 개인정보를 도둑 맞을 위험에 처해 있다. 피싱을 통해 남의 돈을 가로채려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로 공개했다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 시중은행의 태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피싱 피해를 보고도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고객의 입을 막기 위해 은행 잘못이 없는데도 보상을 해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피싱 피해 사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엔 "신고받은 것도, 들은 바도 없다"며 일제히 잡아떼 왔다.

"은행과 감독기관이 은행 이미지 손상만 걱정해 입을 다무는 동안 고객들만 무방비로 사기를 당한 꼴이다." 시중은행의 한 전자금융 담당자의 말이다.

나현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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