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아픔 치유에 태만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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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산가족들의 고통이 TV화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자 사회 각계에서는 『왜 이같은 문제를 드러내고 치유하려는 노력이 지금까지 부족하느냐』 는 자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식인들은 그러한 고통을 대부분 민중들이 겪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왔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게 되었다.
문인들도 큰 충격을 받은것 같다. 시인 조태일 씨는 『민족의 슬픔을 알고 그들의 앞을 개척해주는 역할을 문인들이 맡고 있다면 지금까지 시나 소설이 무엇을 했느냐는 반성을 하지않을수 없었다. 지금까지 문학작품이 민중보다 앞서가지 못하고 감상적으로 허우적거려 절실하지 못했던 점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또 솔직이 말해서 용기를 갖지 못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문학이 분단의 극복, 통일지향의 문학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70년대「민족문학」을이야기하면서 오히려 뜨겁게 타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식·역사의식이 부족했다고 하겠다.
70년대 말의 민족문학에 대한 한 좌담에서 시인 고은씨는 통일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의식이 「비창조적」 이라는 말을 쓰면서 『문인들이 「누가 통일이야기를 하면 아, 나도 통일이야기를 하면 원하지」 하면서도 분단문제를 뼈아프게 느끼고 깨우치는 생활 습성이 없어 열심히 고민하지 않는다』 는 말을 했고, 평론가 백낙청씨도『통일을 일상속에 잊어버리고 살던 사람도 그것을 무언가 자기의 일로 실감할 수 있게 자상한 분석과 구체적 감동이 전달되는 작품을 써야한다』 고 고씨의 말에 동의한 일이 있다. 두사람이 말한 그러한 사정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효한것 같다.
물론 노력은 많았다. 이호철씨의『판문점』,황석영씨의『한씨년대기』,윤흥길씨의 『무제』『장마』, 송기원씨의 『월행』,선우휘씨의 『망향』 등의 소설과 신동봉씨의『금강』,고은씨의『한강에 나가서』, 하종오씨의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등의 작품이 있었다.
이산의 아픔. 분단과 화해정신이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둔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이 분단의 극복과 통일 지향에 어느만큼 투철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산가족방영」 은 이러한 우리문단에 하나의 자극이 되었다. 당장은 모르지만 이를 계기로 이산·분단·통일지향에 대한 작품은 많이 나올것같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문학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전개되어야할 것인가.
우선 충격이 큰 만큼 감정을 노출시켜서 극적인 정점을 향해서 치닫는 작품은 피해야할 것이다. 6.25를 겪은 50년대 직후의 작품같이 되거나, 상상할 수도 없지만 일종의「매카디즘」에 홀려서는 곤란할 것이다.
개인적인 체험보다는 그것을 통한 보편성의 획득도 중요해진다.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더 밀도있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냉전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으로서 동족끼리 갖는 적개심과 증오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동질성에의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단을 고정화하는 의식이 깊어지지 않도록 부단히 깨우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분단을 아픔으로 느끼기보다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안위하려는 생각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는 결국 큰 비극을 잉태하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에 문학은 통일의 문제를 자꾸 들려주어서 독자들이 통일에 대한 의식을 갖도록 해야할 사명이 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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