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휴먼북스] 파시즘은 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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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잔뜩 힘을 주어 더 불거져 보이는 턱뼈로 '완벽한' 정사각형의 얼굴을 한 무솔리니,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을 정치 이미지화한 것 같은 코밑 수염에 선명한 가리마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바짝 붙여 빗은 헤어스타일의 히틀러, 극도로 경직된 거수 경례, 고대 로마 군단의 독수리 문장, 갈고리 십자장…. 파시즘에 대해 전문 지식을 접하기 전에 내 머릿속에 있던 것은 이런 '파시즘의 이미지'들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 대 초 로마 유학 시절 파시즘 연구의 권위였던 렌쪼 데 펠리체(Renzo De Felice) 교수 밑에서 수학할 기회가 있었다. 그로부터 배웠던 것은 '역사적 현실로서의 파시즘'이었다. 이와 함께 파시즘이 1.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을 휩쓸었던 특정한 정치문화 현상에 머무는 게 아니라 언제든 유사 변종으로 번식할 수도 있다는 '파시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 팩스턴(Robert O Paxton)의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교양인) 역시 구체적 역사 현실로서의 파시즘과 그 재생산 가능성에 대해 세밀하게 논하고 있어서 일독할 만하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은 파시즘에 대한 전문 학술 논문을 좀 더 일반적인 논의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파시즘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명확하게 설명해보려는 시도다." 이와 함께 파시즘의 부활을 기존의 경험과 똑같은 형태의 재현이 아니라 기능상 동등한 것의 등장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이 언제든 재생산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파시즘이 취하는 겉모습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이른바 '대중 독재론'과 파시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그것이 학자들 사이의 일이지 아직 폭넓은 대중에게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파시즘에 대한 '기초 지식'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이 이런 논쟁을 즐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팩스턴의 책은 더욱 읽어볼 가치가 있다.

오늘날 왜 이미 역사에 묻혀버린 듯한 파시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파시즘은 무엇보다도 자기 편의에 따라 전혀 개의치 않고 인권 침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들은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휴머니즘의 가치를 아주 유치한 방법으로 유린하면서도, 유치함을 고상함으로 치장해서 대중의 혼을 빼는 재주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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