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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집권 확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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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명박의 서울시장 월급은 세금 떼고 580만원이다. 180억원 재산가에겐 적은 돈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찢어진 가난에 30년 샐러리맨 출신인 그의 무의식에선 '월급=근로의 대가=생명만큼 귀한 것'이란 등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월급은 매달 21일 이명박의 우리은행 계좌에 들어갔다가 박원순 변호사가 운영하는 '아름다운 재단'의 등불기금으로 자동이체된다. 등불기금은 환경미화원과 소방공무원의 복지를 위한 자선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재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난 3년간 그가 불입한 돈이 2억원이 조금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명박은 "충분한 생활이 될 만큼 재산을 모았다. 월급을 기부하니까 사심 없이 일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샐러리맨→대기업 CEO→국회의원→서울시장을 밟은 이명박이 희망하는 인생의 다음 화살표는 차기 대통령일 것이다. 8~9명의 대선 예비 주자들이 주인공인 차기 정치 드라마는 요새 '청계천 정치편'을 방영 중이다. 지금 국면에선 단연 이명박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명박은 2년 뒤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집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집권확률(Power)은 선거의 전략(Strategy)과 인간적 파워(Human power)와 정치적 환경(Environment)의 함수다. 식으로 쓰자면 P=f(S, H, E)라 할 수 있겠다.

이명박이 인생의 다음 화살표로 이동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도전을 통과해야 한다. 선거전략에 관한 도전이 두 개, 인간적인 도전이 하나다. 선거전략은 누구와 제휴하고 누구와 싸울 것인가를 정하는 구도의 문제다.

첫 번째 도전은 이념 과잉에 빠진 일부 우파세력의 손짓이다. 극단적 이념주의자들은 국민투표로 당선된 대한민국 대통령을 김정일 정권의 추종세력으로 공공연히 매도한다. 김정일이 남한의 통치권을 사실상 접수했으며 거기에 한나라당까지 놀아나고 있다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극단적인 우파세력은 강정구 교수 같은 얼치기 친북세력이 발호하면서 같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라 그렇다. 극단 우파와 얼치기 친북은 겉으로만 적대적일 뿐 자기 존립을 위해 상대방이 절실히 필요한 매우 상호의존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증오심과 공격성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다.

극단적인 우파세력의 언행은 중간층과 합리적인 보수-진보층에 혐오감을 준다. 그 세력 안에선 차기 주자로 고건이나 박근혜보다 이명박을 내세우자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이명박이 이들의 선동적이고 전투적인 손짓에 주파수를 맞추게 되면 다른 빛깔의 지지층들이 등을 돌릴 것이다. 이명박을 이념세력에 붙잡힌 인질로 볼 것이기에 그렇다. 이명박은 실적 때문에 폭넓게 지지받는 정치인이다. 이념은 그의 지지와 관계없다.

또 다른 도전은 앞으로 나올지 모를 '이명박 대세론'이다. 대세론을 탄 사람치고 성공한 정치인은 없다. 김영삼 대세론이 예외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 대세론엔 이미 3당 합당=호남 포위 구도라는 승리의 실체가 존재했다. 이회창 대세론은 공허한 대세론이었다. 이인제 대세론은 경쟁자가 던진 올가미였다.

현 여권의 많은 선거전략가는 예를 들어 '정동영 대 이명박'같이 이명박 선수가 본선 링에 올라오는 게 그들에게 유리한 구도라고 본다. 바람과 이미지, 감성 선거에 능한 여권으로선 신비한 매력의 박근혜보다 대결의 각을 날카롭게 세울 이명박이 쉬운 상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청계천 복원 후 이명박 대세론은 여권 쪽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세론은 실체가 아니다. 함정이다.

이명박에겐 인간적 도전도 있다. 실체보다 이미지의 도전이다. 고착된 이미지는 종종 실체보다 파괴력이 크다. 선거 때마다 구설에 오른 불법, 월급쟁이가 어찌 그리 많은 돈이 있느냐는 부패, 성공신화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독선, 자기를 키운 보스를 등졌다는 배신의 네 가지 이미지다.

이념의 손짓, 대세론의 함정, 고착된 이미지를 피할수록 이명박의 집권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