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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플레이스테이션3 콘솔 16대 연결 두 개의 블랙홀 충돌 최초로 재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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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06면

비디오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3 콘솔로 수퍼컴퓨터를 만든 가우라브 칸나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 도미니크 로이터]

지난해 봄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다트머스캠퍼스의 물리학과 교수인 가우라브 칸나 박사는 강의실이 평소보다 붐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많은 학생이 갑자기 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단순히 지식에 대한 갈증 때문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임기로 수퍼컴퓨터 만든 물리학자

 이유는 칸나 박사가 비디오 게임기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만을 이용해 수퍼컴퓨터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학내에 퍼졌기 때문이었다. 게임 애호가가 대부분인 학생들은 200개에 달하는 비디오게임 콘솔을 쌓아 놓은 광경을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다. 칸나 박사는 “이 소식은 캠퍼스를 꽤 뒤흔들었다”고 떠올렸다.

수퍼컴 보러 온 학생들로 강의실 북적
블랙홀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이자 이 대학의 과학컴퓨팅 시각화연구소 부소장인 칸나 박사가 우리가 흔히 보는 플레이스테이션3의 콘솔 16개를 연결해 블랙홀 충돌을 처음 재현해낸 것은 2007년이었다. 그의 연구는 우주와 시간 사이를 물결치며 일렁이는 파동인 중력 파장을 찾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통해 최초로 예언했던 이 파장은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는 것과 같은 우주물리학적인 사건에 의해 생성된다. 블랙홀은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칸나 박사는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이 충돌을 재현한 것이다.

 그가 수퍼컴퓨터를 만든 것은 갈수록 비싸지는 가격 때문이다. 칸나 박사는 “병렬식 수퍼컴퓨터는 과학자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자원을 대체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병렬 컴퓨팅은 일반 데스크톱 컴퓨터, 노트북 등에 쓰는 프로세서를 여러 개 묶어서 고성능을 낸다.

 칸나 박사는 가격이 250~300달러인 플레이스테이션3을 택했다. 다른 게임콘솔과는 달리 플레이스테이션3은 사용자가 각자 원하는 운영체제(OS)를 선택해 깔 수 있어 프로그래머뿐 아니라 개발자에게도 매력적이다. 칸나 박사는 “게임 분야가 거대한 시장으로 자라면서 저비용·고성능 하드웨어를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칸나 박사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이렇게 비디오게임 콘솔을 대량 구매하는 데 지급한 돈을 사용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플레이스테이션3을 만드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미국지사에 연락해 실험에 사용할 수 있도록 콘솔 4대를 기증받았다. 학교 예산으로 8대, 사비를 털어 4대를 추가 구매했다. 모두 16대에 리눅스 운영체제를 깔아 인터넷을 연결하고 수퍼컴퓨터로 부팅시켰다.

“상대성이론과 컴퓨터공학 융합 작품”
조지아 귀넷대학교 물리학과의 리오 버코 교수는 예전에 칸나 박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싼 수퍼컴퓨터의 기능을 이렇게 기발한 방법으로 구현해 냈다”고 말했다. 칸나 박사는 2009년 플레이스테이션3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 계산을 통해 블랙홀에서 발생하는 중력파장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고 이런 내용을 같은 해 학술지 『클래식퀀텀중력』에 실었다. 버코 박사는 “플레이스테이션3 수퍼컴퓨터는 몇 년은 더 걸렸을 과학적 진척을 일궈냈다”며 “칸나 박사는 상대성 이론과 컴퓨터공학을 융합시켜 새로운 이론을 탄생시킨 셈”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칸나 박사는 평행분산컴퓨팅시스템 저널에 플레이스테이션3의 프로세서가 우리가 사용하는 전통적 컴퓨터보다 10배 정도 빠른 과학적 계산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도 실었다. 그의 성공은 플레이스테이션3의 프로세서를 연구하던 뉴욕 롬 소재 미 공군연구소의 이목을 끌었다. 이듬해 공군연구소에서는 독자적으로 1716대의 플레이스테이션3 콘솔을 이용해 수퍼컴퓨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복잡한 대도시의 육상·공중 교통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레이더 이미지를 처리하는 용도였다. 공군연구소 고성능컴퓨팅팀 마크 바넬 팀장은 “플레이스테이션3 수퍼컴퓨터는 도시 전체의 레이더 데이터를 모아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복잡한 컴퓨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군연구소는 칸나 박사의 연구진과 협약을 맺고 176대의 플레이스테이션3 콘솔을 기증했다.

우유 냉장 컨테이너에 넣어 열 식혀
칸나 박사는 우유 배달에 사용하는 냉장 컨테이너에 콘솔들을 집어넣었다. 수퍼컴퓨터는 계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한 시설이 필요하다. 냉장 컨테이너와 플레이스테이션3 콘솔을 활용한 결과, 수퍼컴퓨터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인 7만5000달러에 수퍼컴퓨터 대용품을 만들어냈다. 칸나 박사는 그의 수퍼컴퓨터가 거의 3000대에 달하는 PC와 맞먹는 계산력을 갖췄다고 말한다.

 칸나 박사는 플레이스테이션3 수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이용한 블랙홀 충돌 관련 논문을 두 개 더 발표했다. 2014년 말에는 공군연구소에서 추가로 220대의 콘솔이 도착했다. 콘솔을 추가하면 블랙홀 시스템 시뮬레이션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칸나 박사는 다른 학과 동료 교수에게도 병렬 콘솔을 이용한 수퍼컴퓨터를 연구에 활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대의 한 연구팀은 풍력발전기나 조력발전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프로펠러 디자인을 찾아내는 연구에 계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다. 수학과에서는 학생들이 계산수학, 계산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수퍼컴퓨터를 사용한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3 수퍼컴퓨터가 모든 연구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한계는 메인 메모리 크기다. 플레이스테이션3 1대당 메모리는 256메가바이트(MB) 정도로 100대를 연결해도 25기가바이트(GB)에 불과하다. 칸나 박사가 만든 콘솔형 수퍼컴퓨터는 메모리 용량이 최고 수십 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전통적인 수퍼컴퓨터보다 용량이 아주 작은 셈이다. 1TB는 1000GB다. 계산하는 속도는 빠르지만 많은 양의 계산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한 가지 대안은 비디오게임 콘솔 대신 그래픽카드 등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픽카드는 값이 싸고 카드 하나에 1~2GB의 메모리가 달려 있어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쉽다.

 칸나 박사는 “우리의 다음 프로젝트는 이 그래픽카드만을 이용한 수퍼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계산에서 활용하진 못하겠지만 상당수 과학적·공학적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며 “이를 실용화하는 연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번역=김지윤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jiyo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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