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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사는 왜 영화를 만들까요?

중앙일보

입력

영화 ‘기술자들’(2014, 김홍선 감독) ‘허삼관’(1월 14일 개봉, 하정우 감독) ‘감옥에서 온 편지’(2016년 개봉 예정, 권종관 감독)의 공통점은 뭘까. 매니지먼트사(社)가 기획했거나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기술자들’은 iHQ(대표 전용주)가, ‘허삼관’은 판타지오의 자회사인 판타지오 픽쳐스(대표 김한길)가 공동 제작에 참여했고, ‘감옥에서 온 편지’는 키이스트의 자회사 콘텐트 K(대표 최관용)가 기획·제작하는 영화다. 최근 영화 제작에 뛰어든 매니지먼트 회사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몇몇 업체는 자사 내 영화 기획팀을 신설했거나 영화 제작을 목표로 독자적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매니지먼트사가 영화 제작에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영화 제작에 나선 매니지먼트 업계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 보고 향후 흐름을 살펴본다.

허삼관 (판타지오 픽쳐스 공동 제작)

‘허삼관’은 영화사 두타연과 판타지오 픽쳐스가 공동 제작한 영화다. 판타지오 픽쳐스는 하정우가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판타지오의 자회사다. 매니지먼트사에서 소속 배우의 영화에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것이다. 판타지오 픽쳐스 권남진 이사는 “배우와 영화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작품을 기획하는 것이 취지”라며 “기획 단계부터 배우와 시나리오를 공유하며 배우 이미지가 영화와 어울릴 수 있도록 제작 기반을 조성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허삼관’은 판타지오 픽쳐스의 창립작 ‘롤러코스터’(하정우 감독, 2013)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영화다. 또 ‘의뢰인’(2011)의 손영성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앙드레김’도 현재 시나리오 개발 중이다. 키이스트도 자회사 콘텐트 K를 설립해 영화 제작에 나섰다. 첫 영화는 ‘감옥에서 온 편지’다. ‘S 다이어리’(2004) 등을 연출한 권종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감옥에서 온 편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감된 죄수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변호사의 활약을 그린 작품. 주인공인 변호사 최필재 역에는 김명민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콘텐트 K는 웹툰 ‘밤을 걷는 선비’의 영화 시나리오도 개발하고 있다. ‘군도 : 민란의 시대’(2014, 윤종빈 감독) ‘명량’(2014, 김한민 감독) 등의 시나리오를 쓴 전철홍 작가가 집필 중이다.

기술자들 (iHQ 공동 제작)

사람 엔터테인먼트(대표 이소영)도 자회사 창작을 만들어 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코리아’(2012, 문현성 감독)의 시나리오를 쓴 권성휘 작가가 사극 판타지를 집필하고 있다. 사람 엔터테인먼트는 ‘점쟁이들’(2012, 신정원 감독) ‘분노의 윤리학’(2013, 박명랑 감독) 등 두 편의 영화를 기획한 바 있다. JYP 엔터테인먼트도 영화 제작사 JYP 픽쳐스(대표 표종록)를 설립해 최근 한·중 합작 영화를 제작했다. JYP 픽쳐스는 중국 동방연예그룹과 영화 ‘아이 워너 홀드 유어 핸드’(2015년 개봉 예정, 황수아 감독)의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제작까지 중국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아이 워너 홀드 유어 핸드’는 인생의 다양한 기적 같은 만남을 다룬 휴먼 드라마다.

JYP 픽쳐스 이지연 프로듀서는 “휴먼 드라마부터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의 한국영화를 기획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영화뿐 아니라 한·중 합작 영화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심 엔터테인먼트(대표 심정운)도 최근 영화 제작 진출을 준비 중이다. 심 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9월 회사 내 기획팀을 신설,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심 엔터테인먼트 권미옥 이사는 “제작사에서 배우에게 제안하는 시나리오는 보통 배우의 고정된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배우들은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갈증이 많다”며 “배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매니지먼트에서 영화를 기획·제작할 경우 배우 맞춤형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작품 나올 가능성 기대

도가니 (NOA엔터테인먼트 공동 제작)

캐스팅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기 있는 배우가 출연하느냐에 따라 투자 여부가 결정될 정도다. 그만큼 배우 의존도가 크다. 매니지먼트사들이 영화를 기획·제작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사람 엔터테인먼트 이소영 대표는 “참신한 시나리오지만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투자받기가 어려울 경우, 인지도 있는 배우가 출연을 결정하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며 “배우와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사가 제작에 나서면 다양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른 배우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도가니’(2011, 황동혁 감독)가 그런 경우다. 당시 NOA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공유(현재 매니지먼트 숲 소속)는 ‘도가니’의 원작 소설을 감명 깊게 본 뒤 소속사에 영화 시나리오 개발을 제안했고, 소속사는 공동 제작 방식으로 ‘도가니’를 만들었다. ‘S 다이어리’(2004, 권종관 감독) ‘김종욱 찾기’(2010, 장유정 감독) 등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했던 공유는 ‘도가니’를 기점으로 정극에서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부작용도 뒤따른다. 일부 매니지먼트사는 소속 배우의 출연 조건을 근거로 제작 지분 확보에 목적을 두는 경우도 있다. 또 A급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에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들을 끼워 캐스팅하는, 이른바 ‘패키지 캐스팅’의 폐해도 있다. 콘텐트 K 김재용 팀장은 “3~4년 전만 해도 몇몇 매니지먼트사에서 담합하듯 배우를 ‘끼워 넣기’ 형식으로 캐스팅했지만 지금 그런 관행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니지먼트사가 영화를 제작하는 추세가 지속되려면 소속 배우에 의존해 공동 제작 타이틀만 얻으려고 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자체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작 인력의 전문성이 관건

사실 매니지먼트사의 영화 제작은 갑작스런 흐름이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영화사 우노필름과 매니지먼트 EBM의 합병으로 탄생한 싸이더스 HQ는 소속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당시 싸이더스 HQ 소속이었던 정우성, 임수정 등이 출연한 ‘새드무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90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당시 ‘새드무비’는 ‘기획력 부재’ ‘안일한 스토리’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후 매니지먼트사의 영화 제작은 주춤했지만, 최근 공동 제작 방식으로 다시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제작사 루스이소니도스 대표 신연식 감독은 “브래드 피트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배우들은 제작사 대표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는 배우가 훌륭한 시나리오를 발굴해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며 “결국 영화를 누가 제작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영화 제작은 전문적이고 고도화된 분야이기 때문에 제작 주체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만 믿고 영화를 제작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최현용 소장은 “배우의 개런티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소속 배우를 출연시키는 매니지먼트사의 영화 제작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제작사와 매니지먼트 간 공평한 지분 배분, 철저한 기획 등 합리적인 공동 제작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결국 양질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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