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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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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밀려드는 피난민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쌀값은 아침 저녁이 다르게 뛰어올랐다.
대통령은 점심을 밥대신 삶은감자나 밀가루음식으로 바꾸도록했다. 사실 대용식으로 바꾸고나서 대통령은 몹시 허기가 지는듯했다.
어제 저녁에는 김장흥총경과 야간 민정시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팔다남은 떨이 복숭아를 한보따리 사들고 들어왔다. 복숭아는 좀상해있었다. 나는 곪은곳을 잘라내고 감자처럼 푹껴서 간식으로 내놓았다. 대통령은 너무나 맛있다며 6개나 들었다.

<대용식으로 바꾸라>
부산과 포항에는 각각 8척, 4척의 수송선에서 병력이 상륙했다. 라디오를 들었지만 최근 미국에서 증파된 경비함의 활약상은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해군의 경비정 2척이 진남포에서 남하하는 적의 보급선 12척을 서해안의 좁은 해협으로 들어서기를 기다려 차례차례명중시켜 침몰시켰다. 생존자는 단한명도 없었고 우리 젊은아이들을 죽일 많은 군수품이 고스란히 수장됐다.
이해전의 승리를 국방장관으로부터 정식 보고받았을때 대통령과 나는 함께 원더풀을 외쳤다.
그동안 우리는 이경비정 3척(한척은 뒤늦게 괌도에서 출발, 막 진해에 도착했다)을 살수있도록 허락받기위해 얼마나 허리띠를 조르고 투쟁해야했는지…. 날씨는 조금나아졌지만 아직도 구름이 끼고 시원치가 않다.
비행기 편대는 서쪽으로 날아갔다. 항상 폭탄을 주렁주렁 달고갔던 비행기의 날개밑이 올때는 말끔했다.
대통령은 각의를 소집하고 체신·교통·사회부장관 셋을 따로 불러자신이 만든 성명서의 내용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미국은 또다시 2, 3일안에 전세를 역전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이 우리들 최후의 결전장이며 국민 모두가 죽을 각오로 싸워지켜야될 마지막 보류라고 생각한다.

<해전승리에 원더풀>
더이상 사태를 호도(糊塗) 하지말고 정부나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해야할때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설명에 세장관은 같은 전해를 나타냈다.
대통령은 세장관에게 각료회의장으로 돌아가 전원이 대통령의 뜻에 동의한다면 내각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은 그같은 대통령의 성명발표가 국민들을 걷잡을수 없는 혼란에 빠뜨리는것이라고 우려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국민은 혼란 대신 각오를 할것이다. 미국인은 흥분해도 우리국민은 차분히 닥쳐올 일에 대한마음의 준비를 할것이다. 연합군사령부에서는 내일 시민대회를 연다고 한다. 이것 또한 대통령의 성명을 흐리게할 『조금만 기다리시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Just waiting! Just waiting!』수법의 하나일 것이다.
그들이 시민대회를 열고있는 사이에도 적은 사방에서 대구를 육박해 들어오고 있다. 미국인은 한국인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당신들은 『잘된다, 잘된다, 기다리시오』 식이고 우리는 사실 그대로를 알려 국민각자에게 각오를 시키겠다는 차이일 뿐이다.
그들의 계획-소위 작전상 후퇴라는-그 계획에 우리 땅덩어리는 점점 줄어들고 더이상 숨쉴곳도 없어진 한국인들의 그런 계획을 용납할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인내의 한계를 벗어난것같다. 1주일전 대구상공에 기껏 3대정도 떠돌던 적의 비행기는 다시 65대로 늘어났다는 보고다. 미군은 퇴각보다 적이 새롭고 강한 무장을 하기전에 밀어불여야만 했다.

<미군작전에 불만>
적은 한귀퉁이가 날아가면 곧바로 그자리를 채웠다. 왜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 못하는지 까닭을 모르겠다. 대통령은 그런식의 싸움에 실망을 한 것이다. 대통령자신과 온국민이 대구와함께 운명을 같이할 비장한 각오를 한것이다.
이날밤 대통령은 나를 불러세우고 동경「맥아더」사령부로 떠나라고 했다. 거의 명령조였다. 『마미, 적이 대구방어선을 뚫고 가까이 오게되면 제일먼저 당신을 쏘고 내가 싸움터로 나가야돼요. 그쪽에 부탁을 해놓았으니 당신만은 여기를 떠나주시오.』
나는 절대로 대통령의 짐이 되지않을 것이며 최후까지 대통령과함께 있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손을 꼭잡은 대통령은 『다시는 망명정부를 안만들거야. 우리아이들과 같이 여기서 최후를 마칩시다』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당신을쏴야 할테니>
창밖 멀리 떼지어 몰려오는 피난민들의 울부짖음이 가슴저리게 들려오고 있다.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찾는소리, 끌고온 송아지의 배고픈 울음소리며 달구지의 삐걱대는 소리가 화살처럼 귀에 박힌다. 창틀을 움켜쥔 대통령의 기도도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하느님, 어찌하여 착하고 순한 우리백성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합니까. 이제 결전의 순간은 다가옵니다. 우리 하나가 적 열을 대적할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
7월30일 이른아침 국방장관은 아군 17연대를 미군이 고전하고있는 영동에 배치했고 그자리에는 부산에 상륙한 미해병대가 메우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오늘밤에도대구거리로나갔다. 자정가까이 돌아온 대통령은 『마미, 나 오늘 순사한테 잡혀갈뻔했어』 하는것이었다. 그 사연인즉-.
오늘 낮에 만송 (이기붕씨 아호당시 서울시장) 부부가 대통령께 드리라며 잣한봉지를 가져왔다. 나는허기가 질때 들라고 이 잣을 대통령포킷에 넣어두었다. 대통령은 누구한테 조그마한선물이라도받으면 꼭답례를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이날밤도 대통령은 만송의 잣에대한 담례로 참외를 사주려 했던것이다. 그 참외는 만송의 어린두아들강석·강옥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참외는 1천원에 7개였다. 대통령은 참외장수에게 『덤으로 하나만 더주시오』 하며 덤한개를 집으려하자 참외장수는 『할아버지라 싸게 드렸는데 덤까지 가져가면 순사가 잡아가요』 하며 뺏더라는 것이다.

<행색누추해 몰라봐>
만송의 외모가 워낙 작고 쪼글쪼글 한데다 대통령도 풀안먹인 후줄근한 모시차림의 늙은이였으니 참외장수가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일행을 알아볼리가 없었던 것이다.
『거참 참외 덤 얻으려다 순사한테 잡혀갈뻔 했다니까….』 대통령은 재미있었다는 듯 자꾸만 웃었다.
나도 참외장수가 되었다. 힘없는 모시옷의 저 노인네, 대통령은 피곤하고 더 늙어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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