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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별미 맛보고 영화제 보고 …연주 여행 즐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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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연주 때문에 거의 매년 한국에 오지만, 늘 한국 음식이 그립습니다. 가게 홍보하는 것 같아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간장 게장 전문 식당은 꼭 방문합니다.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지방 순회공연의 즐거움 중 하나죠."

30년 넘게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 디나르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백건우(59)씨가 서울에 온지 벌써 40일째다. 지난달 5일 경기도 평택에서 시작한 독주회는 원주.양산.부산.서울.안산.순천.춘천을 거쳐 22일 진주, 25일 당진 공연을 남겨 두고 있다. 17일 성남 아트센터,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20일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지휘 이반 피셔)의 첫 내한공연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협연한다.

예년처럼 영화배우인 부인 윤정희(61)씨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도 할 겸 가을 시즌에 고국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백씨는 부인 덕분에 지독한 영화 매니어가 됐다. 한국 공연 때는 주최 측이 제공하는 호텔을 한사코 마다하고 서울 여의도에 있는 윤정희씨 언니 집에 방 하나를 얻어 지낸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외동딸 진희(28)씨가 파리 음악원에 진학한 후부터는 연주 여행 때 말동무도 할 겸 부부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연주가 없는 날에는 서울 평창동에 있는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님 댁에서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립니다. 주변이 조용하고 경치도 좋고 스타인웨이 피아노까지 있죠. 신세를 진 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연습이 끝나면 걸어서 자하문에 있는 손만두집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도 서울 생활의 즐거움이다. 12일 춘천 공연이 끝난 후 기자와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한 백씨는 "맛있는 식당 있으면 소개해주세요"란 말을 빼놓지 않았다.

백건우씨 부부는 연주 여행을 떠날 때 일부러 일정을 앞뒤로 늘려 잡는 편이다. 시차도 적응하고 처음 가는 곳이면 주변 경치도 둘러 볼 겸 글자 그대로 '연주 여행'을 하기 위해서다. 현지 문화와 음식을 충분히 경험하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는 방식이다. 지방 순회공연을 며칠씩 간격을 두고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엔 베토벤 소나타에 푹 빠져 있습니다. '평생 연주해도 무궁무진한 깊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한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의 말이 실감납니다. 2007년 말까지 전곡 녹음 CD를 완성할 계획입니다. 8일간 쉬지 않고 베토벤 소나타 전 32곡을 완주하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입니다."

한국 공연이 끝나면 부다페스트, 상트 페테르부르크, 로마, 나폴리에서 협연과 독주회 일정이 잡혀 있다. 백씨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전 남대문 시장에 들러 빠뜨리지 않고 사는 게 있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다. 파리에서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육개장을 끓여 먹기 위해서란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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