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네모세상] 이슬인가 눈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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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그친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건만, 젖은 볏단을 뒤집어 말리는 아낙은 허리 펴 하늘 한번 올려 볼 틈도 없다.

"무슨 비가 사흘 걸러 오능교. 요새 날씨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아니고 '삼우사온(三雨四溫)'인기라. 이것 보소. 나락에 싹이 다 폈다 아잉교."

'올해 농사 잘 되었느냐'고 너스레 떨며 건넨 인사말이 철딱서니 없는 꼴이 돼버렸다.

"올해부터 추곡 수매는 없다 하고 쌀값도 자꾸 떨어지고. 어디 내다 팔 데도 없으니 우짜노! 배운 재주가 땅 갈아 씨 뿌리고 거두는 것뿐인데…. 땀 흘린 대가는 고사하고, 밑지지나 말아야 할 낀데."

햇살에 일렁이는 황금 들녘은 멀미날 정도로 아름답건만, 속 시원한 해답 없는 농촌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풍성한 가을걷이에 어깨춤 덩실 추는 사진은커녕 카메라 잡은 손만 머쓱할 따름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진의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또한 사진의 주제가 된다. 한 톨의 벼 이삭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도 농부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비록 작은 물방울 하나라도 수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그 속에는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

이슬방울 같은 아주 작은 대상을 접사할 경우 초점거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 고정한 뒤, 카메라를 앞뒤로 이동하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피사체를 가장 크게 잡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래도 화면에 여유 부분이 많이 남게 마련이니 트리밍으로 앵글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shotgun@joongang.co.kr>

< Canon EOS-1Ds MarkII 100mm Macro f8.0 1/125초 iso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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