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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적은자녀, 외로운 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어머님이 늘 「정신이 없다」고 하실 정도로 9남매가 집안을 시끄럽게하면서 자랐읍니다. 사실따지고 보면 경제적으로 행복했던 시절은 아니었어요. 옷도 동생이 헌옷을 물려 받아야하고 음식을 만들어도 9등분으로 나눴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아무리 가난했더라도 그때가 즐겁고 재미 있었읍니다. 남매들이 밤새우며 웃고 떠들고 했던 것이 말입니다. 그때는 외롭지 않았어요.』
회사원 정기철씨(39)는 곧잘 옛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 한명을 둔 그는 자랄 때의 「가정」이라는 개념과 지금의 「가정」이란 개념이 전혀 달라진 듯한 느낌이라고 까지 말한다.
한명뿐인 아들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라는 생각이 늘 마음에 걸리고 있다고도 했다.
정씨의 경우 부부가 자녀 한명을 낳고 단산해버렸으며, 젊었을 때 한명의 자녀에게라도 정성을 쏟자는데 부부가 의견을 같이 했다. 두사람 다 자녀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고 단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소자녀에 대해 쉽게 동의할수 있었다.
한국 인구보건연구원의 82년조사(49세이하의 기혼여성 5천3백71명 대상)에 의하면 두자녀가 이상적이라고 답한 여성이 54.6%였으며 세자녀가 이상적이라고 답한 여성은 30.5%였다. 71년 가족계획 실태조사에서 두자녀가 이상적이라고 답한 여성은 6%에 불과했다. 따라서 10년동안 자녀수에 대한 태도는 두자녀 가족으로 크게 접근하고 있다.
자년 하와이 동서문화샌터의 인구문제연구소가 한국·필리핀·미국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한자녀 또는 두자녀 가정에서 아이를 더 낳지 않는 이유로 경제적인 여유때문(여 55%, 남 54%)을 드는 사람이 많다. 돌볼수 없어서(여19%, 남l7%), 인구과잉때문(여8%, 남17%), 자유롭지 못해서(여5%, 남12%)가 그다음 이유에 속한다.
81년 이동원교수(이대·사회학)의 한 조사에 의하면 자녀가 없을 경우 그래도 살아간다는 사람이 59.3%로 58년 소실을 두어 자녀를 얻게 하겠다(38.4%), 양자를 얻겠다(27.2%)에 비하면 자녀에 대한 의식이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조사결과들은 핵가족화, 그리고 가족계획의 끊임없는 계몽등이 가져온 현대적 현상이라고 이교수는 진단하고 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구호가 이제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제「둘만 낳아도 많다」는 구호마저 나와 소자녀 지향의 경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대에 들어 흔히 자녀의 과보호나 자녀에 대한 무관심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자녀교육에 대한 오늘의 커다란 문제점이기도 하다.
유안진교수(서울대·교육학)는 소자녀에서 과보호가 오며, 자녀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부모에게서 무관심의 현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현대가정의 문제점이란 지적이다.
과보호의 경우 집안에서의 폭력·등교거부등 부작용이 오며, 무관심의 경우 사회에서의 폭력이나 비행으로 발전할 소지가 많다.
자녀가 많을경우 자연히 집단의식이 생기게되고 사회적응도 쉬워진다. 그러나 소자녀일 경우 개인 중심이 되기 쉬우며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문제점이 된다고 이교수는 말한다.
사실 현대는 부모에게도 어려운 시대다. 사회에 불안요인이 많은 만큼 자녀에 대한 보호나 배려는 옛날에 비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이때 소자녀일 경우 과보호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불행한 쪽은 자녀가 되기 쉽다.
『나 자신 교제를 좋아하지 않아 집안에만 있으면서 아이를 돌보는 편입니다. 엄마가 집안에만 있으니 자연히 7살난 딸도 집안에서만 놀아 친구가 없어요. 유치원에 보내도 잘 어울리지 못해 다니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주부 손옥순씨(32)는 자신의 과보호를 시인한다.
과보호의 경우 이처럼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고 자립성도 희박해진다. 결국 정상적인 모녀관계나 부자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학교에서 꼭 와 달라는 전갈을 받고 처음으로 학교에 가봤어요. 우리아이(고1남학생)가 선배와 싸워 말썽을 많이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였읍니다. 사업관계로 너무 무관심했던게 아닌가 지금 후회하고 있어요.』 사업가 김모씨는 자녀교육에 무관심했음을 후회하고 있다.
자녀에게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부모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 않거나, 일종의 의무로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경우가 많다. 이경우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자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앞의 조사에서 자녀가 없어도 그대로 살아간다는 사람이 59%가 넘고 있음은 현대가정에서 그만큼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실 부부가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가운데 일부러 자녀를 갖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녀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으며, 또 그동안 일때문에 자녀를 가질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말.
핵가족화, 인구폭발 저지를 위한 가족계획 홍보등의 영향으로 소자녀 가정은 현대가정의 한 특징이 되고 있다.
소자녀 가정은 교육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의 공백, 또는·부모나 자녀 모두가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현대인의 고독」이란 문제도 제기된다. 소자녀 가정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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