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놀이터 691곳, 안전검사 안 받아 폐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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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놀이터의 일부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 이 놀이터는 안전검사를 받지 않아 폐쇄될 위기에 놓여 있다. [장혁진 기자]

지난 21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A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그네와 미끄럼틀 군데군데가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듯 녹이 슬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아이들이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설치된 나무발판은 받침대가 부서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였다. A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놀이터 5곳은 2004년 준공된 뒤 설치검사(안전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이 놀이터를 포함해 오는 26일까지 설치검사를 받지 않은 전국 어린이 놀이시설은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라 폐쇄된다.

 딸(5)과 함께 산책을 나온 아파트 주민 김모(35·여)씨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씨는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고, 충분한 사전설명도 없이 없어진다고 하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이유를 물으니 “돈 들여 굳이 (설치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설치검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25만~30만원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아깝다는 것이다. 특히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수천만원에 달하는 놀이시설 교체 비용은 주민들이 내야 한다.

 서울시 전체 놀이터 중 약 10%가 문을 닫는 놀이터 대란(大亂)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15일 기준으로 설치검사를 받지 않은 놀이터는 691곳. 설치검사를 받았으나 안전기준 미달 판정을 받은 곳도 58곳에 이른다. <중앙일보 2013년 8월 20일자 2면>

 서울시가 꺼내든 대안은 ‘창의적 어린이 놀이터’ 재조성 사업이다. 서울시 공원녹지정책과는 22일 안전기준에 못 미치거나 노후한 어린이 놀이시설 중 29곳을 올해 어린이날까지 리모델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총 58억원의 예산을 들여 난곡어린이공원(관악)·구산동마을마당(은평) 등 시내 26곳에 창의적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고 민관협력형 어린이 놀이터 3곳을 조성한다.

창의어린이놀이터로 조성되는 은평 구산동마을마당의 과거 모습(왼쪽)과 조감도. [사진 서울시]

 창의적 놀이터는 아이들의 모험심과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모래 놀이터와 미로놀이·그물 등을 활용한 놀이시설로 꾸며진다. 세이브더칠드런과 한국공원시설협동조합이 조성하는 민관협력형 어린이 놀이터는 모든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세대통합형으로 지어진다. 서울시는 ‘좋은 어린이놀이터 십계명’도 제정한다. 놀이깍두기(놀이교사)를 지원하는 ‘공원놀이-100’ 사업으로 야외놀이문화를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도시공원 내 놀이터 리모델링에만 집중돼 있어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곧 다가올 ‘놀이터 대란’으로 폐쇄 예정인 곳은 A아파트 단지 놀이터처럼 민간이 운영하는 놀이터가 대부분이다. 설치검사를 받지 않은 615곳(96%)이 아파트 등 주택단지에 집중돼 있다. 장종진 한국안전교육협회 본부장은 “취약계층이 사는 영세 주택단지들은 설치검사를 받거나 보수비용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한시적 유예기간을 주거나 지자체가 수리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놀이터 폐쇄회로TV(CCTV) 등 방범시설 설치에 대한 별도 지침이나 관리인력 배치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10월 서울시는 서울지방경찰청과 합동으로 공원 운영실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돼 ‘레드 등급’을 받은 어린이공원은 16곳에 달했다. 오해영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은 “공원 순찰 등 안전대책을 강화하는 한편 공동주택 지원사업에 놀이터 개보수 사업이 우선 선정될 수 있도록 각 자치구에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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