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귀여운 조명애 잘 챙겨주니 남한 말도 척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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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헤어진 모습 이대~로."

이상은의 노래 '언젠가는'의 가사와 곡조가 가슴 속을 뭉클하게 파고드는 남북 공동 광고 '하나의 울림 2(애니콜)'가 요즘 화제다.

이 광고에서 북한 무용수 조명애(24)와 진한 동포애를 연출한 우리 시대 대중문화의 아이콘 이효리(26)는 덕분에 '통일 일꾼'이란 별명도 얻었다.

이효리와 조명애를 따로 찍어 서로 스쳐 지나가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던 '하나의 울림 1'과 달리, 이번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두 사람이 직접 만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생각보다 높았던 이념의 벽에 괴리감을 느끼면서도 언니다운 이해심과 동포애로 광고 촬영을 마쳤다는 효리. '애니모션' 후속 '애니클럽' 캠페인과

2집 앨범 준비 등으로 바쁜 그녀를 단독으로 만났다. 그녀의 솔직담백함은 '역시 효리'라는 찬사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머리에 물감 들인 효리 동무가 조선여자 같지 않다'는 조명애의 발언에 맘이 상하지는 않았나.

"전혀. 오히려 그런 걸 이해 못 하는 순진한 모습이 귀여웠다. 북에선 평생 염색도 못할 텐데 그게 아쉽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북에서 함께 온 사람들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네티즌들도 나처럼 명애의 입장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남북한 대표 모델의 대결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부담은 없었나.

"휴머니티를 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명애가 더 예쁘게 나와서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굳이 여기서 내가 더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예쁜 건 국민이 다 알고 있지 않은가(웃음)."

이념의 벽을 느낀 적이 있었다면.

"남자친구, 결혼계획 등에 대해 얘기하던 중 명애가 '정말로 남쪽에 거지가 많으냐'고 물었다. 기분을 띄워주려고 '북한은 거지가 없다면서요?'라고 되물었더니 명애의 표정이 밝아졌다. 남한의 유행에 대해서도 '난 그런 거 싫다. 우리 것이 좋다' '남쪽은 시끄럽고 공기도 안 좋다'고 잘라 말했다. 커다란 장벽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에는 철저히 사적인 얘기만 했다."

조명애를 많이 챙겨줬다고 하던데.

"사람 많은 곳에서 촬영 신이 있었는데 명애가 무척 긴장했다. 군중신에 익숙한 내가 동생 같은 명애를 감싸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애는 사석에서는 남한말도 잘 따라하고, 장난도 잘 건다. 귀여운 동생 같다. 남자를 사귀어본 적은 없지만 연애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를 사귀어 봤느냐고 묻기에 '암암리에' 많이 사귀어봤다고 말했다(웃음)."

함께 춤추다가 눈시울을 적셨다고 했는데.

"같이 춤을 춰야 하는데 서먹했다. 그때 누군가 아리랑을 틀었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명애도 그랬다. 그때 '우린 같은 민족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 뒤 광고를 보고 사람들이 뭉클하다고 말할 때 '내가 큰일 했구나'하는 기분이 든다."

가까이서 본 조명애는.

"명애는 일단 청초하게 생겼다. 여성스럽고 고와서 남한 남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그래도 춤출 때 보면 끼가 보통이 아니다. 그런 끼라면 연기도 잘할 것 같다."

드라마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연기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드라마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드라마 '세잎 클로버'를 통해 연기의 매력은 충분히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 욕심은 뮤직비디오 등에서 충족시키겠다."

현재의 인기에 만족하나.

"인기는 한마디로 뜬구름이다. 오래 버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 데뷔 8년 만에 정상에 올랐으니까 빨리 오르진 않았다. 내려가는 것도 천천히 내려갔으면 좋겠다. 솔직히 연예계 생활은 오래 하고 싶지 않다. 서른 살까지만 하고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 그때까지는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도 이끌고 가는 진정한 '트렌드세터'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의 '싸가지 없는'말투까지 유행이 돼야 진정한 트렌드세터가 아닐까(웃음)."

글=정현목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컵라면 함께 후루룩 ~ "역시 한민족입네다"

'청바지'와 '컵라면'. 남북 공동광고를 만들며 남한 스태프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두 단어다. 이는 남북관계의 현주소이자 해빙의 실마리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배경은 이렇다.

지난 4월 초 1차 광고 촬영 뒤 북한 측은 이효리의 청바지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다.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이유였다. 제일기획 박용진 국장은 "2차 촬영에서는 청바지 신이 없어 문제가 안 됐지만, 이념 차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촬영 초기, 광고라는 개념이 생소해 거부감을 표시했던 북측은 연출 하나하나에도 일일이 '평양의 훈령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버텨 제작진의 애간장을 태웠다.

조명애와 이효리의 만남이 2차 촬영으로 미뤄진 것은 명애가 덜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우려한 북측의 고집 때문이었다고 스태프들은 말했다. 북측은 1차 광고에서 조명애에 대한 반응이 좋게 나오자 2차 광고용 촬영에서 둘 간의 만남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촬영 초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준 일등공신은 컵라면과 김치였다. 중국 스태프들이 중국 음식을 먹는 사이, 남북한 스태프들은 가져간 컵라면과 김치를 함께 먹으며 마음의 벽을 헐었다고 한다. "입맛을 보니 역시 같은 민족"이라는 말과 함께. 묶은 머리 때문에 조명애로부터 '불구(남성성을 상실한 남자라는 뜻의 북한 은어로 추정)'라는 말을 들었던 차은택 촬영감독은 "남북 간 가치관 차이가 너무나 컸다"며 "그럴수록 남북이 더 자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김준현 과장은 "6자회담 난항 등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2차 촬영이 무산될 뻔했다"며 "그러나 남북 모두 이번 광고는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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