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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한돌맞은 김상협총리 |「기대」컸던만큼 아쉬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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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막힌데는 뚫고, 맺힌데는 풀어주고, 굽어진 것은 펴나가겠다』―. 장·이사건, 의령사건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수습이라는 과제를 안고 등장한 김상협국무총리가 이같은 취임포부를 말한지 25일로 만1년. 그동안 그의 말대로 얼마만큼 뚫리고 풀리고 펴졌는지를 평가하기에는 재임기간 1년이 너무 짧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가 워낙 컸던만큼 아쉬움도 적지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이런 아쉬움뒤에는 기대자체가 과대하지 않았나 하는 얘기도 있지만 최근 대두되는 김총리에 대한 정치역량에의 기대를 보면 김총리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크게 퇴화하지는 않은 것도 같다.
○…국무총리에게는 크게 행정·정치의 두가지 기능이 있다.
행정적 측면에서 김총리는 과거 역대총리와 큰 차이가 없다. 과거 총리들이 대통령과의 관계, 개인적인 성격등에 따라 총리직의 모습도 강·수등으로 특색지어 졌지만 김총리의 경우 오히려 큰 특색이 없는 것이 특색이다.
취임후 비서실에 일체 손을 대지 않았고 수행비서관 조차 자기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다.
김총리의 이같은 면모는 『문제가 한 두사람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아라비안나이트식의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총리는 융화적·중간자적 존재다』등 그의 자주 쓰는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총리는 재임 l년간 △국무회의를 56회 △국무위원 간담회등 각종회의를 58회 주재했다.그동안 △부처업무보고 1백29회 △사회각계 인사면담 1백29회(5백66명) △외국인사접견 1백3회등을 기록.
이밖에 중남미 4개국 순방 및 지방시찰 18회를 포함, 1백56회에 걸쳐 각종 행사등에 참석했는데 막상 자신의 출신도인 전북에는 한번도 못간 것이 이채롭다.
총리실에서는 △대형사건·사고로 어수선 한때 취임해 민심의 동요를 가라 앉혔고 △침체했던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김대중씨의 석방과 도미 △광주사태관련자 석방 △정치피규제자 1차 해금등을 취임 1년동안의 진전으로 꼽는다.
비록 「정치총리」이기를 굳이 사양하고 「정치학 총리」로 자임하고 있지만 최근 3당대표와의 회담으로 정치권의 화합에도 일조를 하고있지 않느냐고 내세운다.
○…그러나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학원·언론·수출부진·외채·투기·소득격차·사치·퇴폐풍조등의 문제와 재야정치인 문제등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또 김영삼씨 단식사건으로 빚어진 정국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아직 총리는 이렇다 할 정치적 역할을 못했던게 사실이다.
그것이 대통령중심제란 우리의 권력구조상 제도적 한계인지 아니면 체제의 중핵적인 추진자요 수호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인지 알수 없지만 최근 정부·여당에서는 후자의측면에서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국민들 역시 취임당시 기대를 모았던 인간 김상협특유의 능력과 자산에 조금씩 회의릍 품게된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민정당쪽에서는 김총리가 정치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자리를 가졌는데도 이를 의식적으로 회피해 온 것 같타는 회의론이 있다. 야당쪽에서는 『취임초의 그 유명한「막힌 곳을 뚫고 굽은 데를 펴겠다」는 말이 어디로 갔느냐』고 불만이다.
민정당의원들은 이번 국회에서 김총리의 『맡아 있는 분야에 한계가 있고…』라고 한 대목에 특히 불만이다.
『기왕 참여를 했으니 같은 배를 탔다는 의식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줘야지 않느냐』 『총리도 발에 진흙을 묻혀야 할땐 묻혀야 한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그런가하면 야당쪽에서는 『정치총리가 아닌 행정총리로서의 1년이었다』(김현규·목요상·김태식의원)는 평가와 함께 『과오가 없었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현실정치에 대한 발전적 기여가 없었던것이 아쉽다』(김진배·박관용의원)는 지적들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19일 김총리와 여당간부가 골프를 같이 한 자리에서 이종찬민정당총무는 『김총리는 학계·언론계·재야등에 남다른 인연이 있는만큼 지금이 바로 김총리가 정치력을 발휘해 줄때』라는 요청을 했었다는 후문이다.
○…총리지명 발표가 있은지 꼭 1년만인 24일하오 김총리는 청와대를 방문해 1시간반 전두환대통령과 요담했다.
제117회 임시국회 직전의 청와대 방문이 국회대책 관계였다면 이날 방문은 그 평가와 앞으로의 문제에 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날 청와대행은 그에 대한 「정치총리」로의 주문이 민정당에 의해 강조된 직후라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가 준비한 제117회 임시국회평가서에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소신과 정국진단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 국회공전에서 보여진 「제도권 정치의 한계현상」과 김영삼씨 단식사건등에서 연유한 「민한당과 재야세력과의 연계가능성등을 지적하며 안정기조를 해치는 도전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는 이례적으로 정치성도 내포되었다는 관측이다.
여당으로서는 나름대로 다듬고 가꾸어놓은 정치권이 그동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재야라는 변수에 의해 빚어진 파랑과 동요를 헤치고 정리해 나가는데 있어 김총리의 자산을 활용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최초의 호남출신 총리, 인촌·수당집안이란 가문의 인연, 고대총장으로서 쌓아온 넓은 지면, 서두르지 않는 원만한 성격등은 그만이 가진 자산이다.
지금은 안팎으로 총리의 정치역할이 기대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권한과 힘이 따라야 한다. 또 총리의 정치역할에 대한 적정선을 정부·여당이 어느정도까지 과연 수용할 수 있겠느냐 하는 델리키트한 문제점도 있다.
그래서 정치총리로서의 그의 재출범이 우리의 권력구조상의 특성과 어울려 어떤 모양으로 구형될지는 좀더 두고볼 일이다. 따라서 김총리에 대한 진정한 평가 또한 아직은 이른 것도 같다. <김현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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