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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마미」는 이승만대통령이 즐겨부르던 「프란체스카」여사의 애칭이다. 그 「마미」가 엄청난 전쟁을 겪는동안 일기를 남긴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공산군은 6월5일 새벽 5시에 쳐들어왔다. 나는 이날 상오 9시 치과에 갔고 대통령은 9시30분 경회루로 낚시를 나갔다.』
이렇게 시작된 1950년 6월 25일의 일기는 그 시대 역사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끔 이 박사가 손질을 가한 대목도 있었다고 한다. 틀린부분은 아웃(out), 보충할 부분은 모(more) 라고.
일기에는 서울시민이 생생하게 느낀 6·25의 발발모습 그대로가 적혔다. 「프란체스카」여사는 『38선이 깨졌다』고 했는데 그날 서울시민들은 『38선이 터졌다』고 수군댔다. 전면 남침의 성격을 당일 오전까지 모른 것이다. 일기에는 이 대통령이 한밤중 동경의 「맥아더」장군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을 소령때부터 잘 안다고 했다. 그의 당인이 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일이 있었다는 뜻밖의 사실도 나온다. 「프란체스카」여사는 『장인의 이름이 기억에 없다』고 했으나 아마 「브룩스」씨 일듯.
「맥아더」는 42살의 노총각(당시 웨스트 포인트교장)으로 「루이즈·크롬웰·브룩스」여사와 결혼했다. 1922년의 일이다.
8년후 맥아더는 그녀와 이혼하고 1937년 「진·페어클로드」여사와 재혼했다.
일기는 또 이 대통령의 「무초」대사에 대한 인상, 평양에 남은 고당 조만식을 높이 평가한 대목도 있다.
이 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의 로맨스는 알려진 그대로다. 「프란체스카·도너」양은1933년 제네바호반의 한 호텔에서 만난 『동양의 노신사』(당시 58세)에게 매혹돼 이듬해 망명지 미국에서 결혼했다. 올해로 금혼에 한해가 모자란 결혼 49년째.
「프란체스카」여사는 빈틈없는 경무대 안주인이었다.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대외적 역할은 내조자로서의 한계를 넘지 않았다. 한복하며 오히려 동양 여성의 미덕에 보다 익숙한 인상이었다. 일기에도 노대통령을 다소곳이 보필하는 정성이 구석구석에 보인다.
퍼스트 레이디의 일기로 최근에 가장 감동적인 것은 「존슨」미대통령 부인 「버드」여사의 『백악관일기』였다. 「존슨」부통령은 댈라스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다. 「케네티」대통령의 관을 실은 비행기다. 1963년 11월22일.
「버드」여사의 일기는 당시 모습을 이렇게 적는다. 『좁은 비행기안에는 「재키」여사가머리를 흐트러뜨린채 나와 남편사이에 섰고 남편앞에는 「휴스」판사가 서 있었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진실하게 묘사돼 있다.
퍼스트 레이디의 일기는 권력의 뒤안길, 지도자의 품성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데서 흥미롭다. 더구나 그것이 진실의 기록일 땐 더욱 감동적이다.
「프란체스카」여사의 일기는 역사적 자료로서도 가치를 갖는다. 이 박사는 「마미」라는부인과, 「마미」라는 비서와, 「마미」라는 사관과 평생을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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