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들 '자선바자' 20년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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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아 조.강숙희.진태옥.설윤형.김동순.루비나.지춘희.최연옥….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정상급 패션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이 아무리 바빠도 1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모이는 행사가 있다. 바로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자선바자다.

국내 유명 디자이너 42명으로 구성된 세계패션그룹(FGI) 한국협회가 주최하는 이 바자는 1985년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봄.가을 두 차례씩 열렸다. 바자 수익금은 소년소녀 가장, 무의탁 노인, 폐결핵 환자, 시각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여왔다. 그동안 1700여 명의 불우 이웃이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 시각장애인 1500여 명이 개안 수술을 지원받았다.

디자이너들이 ‘I love children’이란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순·김은희·오은환·이규례·루비나·강희숙·최연옥씨. 임현동 기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로서 뭔가 아름다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벌인 일이죠. 처음엔 잘 될까 싶었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뜻을 모아왔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네요."

자선바자(현대백화점 본점 4~9일,목동점 10~13일)에서 만난 디자이너 루비나씨는 바자를 시작하던 20년 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고급 의류가 귀하고 바겐세일이 드물던 때라 행사 시작 전부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죠. 바자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는 수백m나 줄이 이어졌을 정도예요. 유명 디자이너들의 옷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죠."

초창기엔 주로 저소득층 여성들을 위한 탁아소 건립 등에 힘썼다. 그러다 10여 년 전부터는 봄엔 청각 장애, 가을엔 시각 장애 어린이들을 돕는 데 수익금을 쓰고 있다.

90년대 후반 들어 백화점 바겐세일이 흔해지며 '디자이너들의 바자'가 가진 희소성은 다소 퇴색했다. 그래도 좋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 디자이너들의 참여는 계속됐고,'영원히 바자 장소를 무상 임대하겠다'고 한 백화점 측도 약속을 지켰다.

경기가 안 좋아 수익금이 적을 땐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올해 바자는 20주년을 맞아 작은 변화를 꾀했다.'I love children'이라는 로고를 붙인 사은품을 구매 고객들에게 나눠준다. 바자의 의의를 더 잘 알리기 위해서다.

최연옥 FGI 한국협회 회장은 "FGI 한국협회를 패션업계를 대표하는 정보 교류 및 사회공헌 기구로 확대해 더 적극적인 활동을 벌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FGI 한국협회는 78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패션 관련 단체다. FGI는 패션계 종사자들의 국제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은 43개국 1만여 명이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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