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파란…″부실답변〃시비|임시국회 초반부터 정회-퇴장-발언중지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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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일 김상협 국무총리의「초간략 7분 답변」은 국회를 1시간50분간 정회하게 하는 등 예기찮은 파란을 몰고 왔다. 두 의원의 80분간에 걸친 질문을 단 7분만에 김총리가 웃는 표정으로 끝내자 민정당 의석에서는 일제히 실소가, 민한당 의석에서는 야유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
야당의 발언이 위험 수위에 도달할 것에 대비, 『노골적인 야유를 퍼부어 분위기를 경직시키지는 말되 문제발언이 나오면 삼삼오오 웅성거려 반응을 보이라』는 작전을 시달해 놓은 민정당 지도부는 직감적으로 김총리의 답변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것을 우려.
이때 민한당 의석으로부터『이런 국회를 해서 뭣 하느냐』『문공 장관은 왜 답변을 안 시키느냐』는 고함이 나오고 야당 의석에서는 불만의 술렁거림이 일었다.
남은 2명의 질문이 있고 난 후 민한당은 의사진행발언을, 국민당은 보충질문을 요구했으며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권익현 사무총장과 이종찬 총무등 민정당 간부들은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오세응 장관을 김총리에게 보내 야당의 불만과 민정당의 우려를 전달.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등단한 임종기 민한당 총무는 김총리의 답변이 지극히 불성실하다고 비판하고 성실한 답변준비를 위해 잠시 정회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어 보충질문에 나선 임덕규 의원 (국민)도 『총리가 너무 무책임하다』며 『다른 장관에게 성실하게 하라고 지도편달을 해야할 총리 스스로가 그러니 딴 장관들도 국회를 경시하는 것 아니냐』고 호통.
이에 채문식 의장이 『정부측 답변이 매우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다』며 『누락됐거나 미흡한 부분은 이미 답변한 부분이라도 다시 하라』고 경고한 뒤 김총리에게 발언기회를 주었다.
이때 민한당 의석에서 임재정·김병오 의원 등이 『제1야당의 원내 총무가 정회를 요구했는데 그냥 묵살하느냐』『퇴장하자』는 등 고함을 쳤고 이어 몇몇 의원이 의석을 박차고 나오기 시작.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김총리는 발언대에 서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국무위원석과 발언대 중간위치에 서있었고 박관용 부 총무가 의장 석으로 뛰어올라가 잠시 귀엣말을 나누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3, 4분간 지속.
결국 민한당 부총무단이 의원들을 만류하고 김총리가 답변을 하기 시작함으로써 장내는 일단 평온을 회복.
김총리는 『내 답변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신데 그런 문제가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고 사과의 뜻을 표하고 답변을 마친 후에도『내가 일부러 성의 없는 답변을 하거나 시국을 보는 눈이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맡은 일에 한계가 있고 직분에 충실해야 하므로 한 걸음 한 걸음 해결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거듭 해명.
그러나 두 번째의 총리답변내용도 1차 답변 때와 대동소이 하자 민한당 의원들은 내무장관의 답변이 진행되는 도중 임총무의 지시로 퇴장. 내무장관답변이 끝나자 조중연 부총무는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총리의 답변은 녹음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 같다』면서 정회를 다시 요구하자 채의장이 10분간 정회를 선포.
그러나 정회를 선포한 순간에는 사실상 민한당 의원들이 거의 의석에 없었고 박관용 부총무는 『정회가 아니라 사실상의 퇴장』이라고 설명.
○…정회가 선포되자 민한당은 즉각 유치송 총재주재로 원내대책회의를 열었고 채의장은 의장실에서 윤길중·고재청 두부의장 및 3당 총무들과 만나 대책을 협의. 이 자리에서 임민한 총무는 △총리의 사과 △15일의 경제문제에 대한 답변에 앞서 총리의 보충 답변 청취△14일 본회의는 그대로 산회하자는 민한당 원내대책회의의 결과를 제시.
이에 대해 여당측은 ①총리의 사과를 딱 떼어 못박지 말고 답변도중「유감표명」으로 하고 ②15일 보충답변을 듣는 대신 ③이날 중 나머지 정부측 답변을 마저 듣는 선에서 절충하자고 제의.
이 같은 총무 단의 합의사항을 갖고 임총무는 당 간부들에게 보고한 후 총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소속의원들에게 통보.
그러나 김병오·민병범 의원 등 소장의원들이 나서『내일의 답변내용도 뻔 할텐데 더 이상 정부·여당의 들러리나 설 필요가 없다』며 『당장 정식 의원 총회를 열어 당의 의지를 보이자』고 요구.
이에 임총무는 『내일 총무회담도 있고 정부측과 다른 루트의 접촉도 있을 것 같으니 내일까지 기다려보자』고 했으나 박완규·유준상·홍성표·한광옥 의원 등이『내일이면 늦는다. 내일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고작 상임위 보이코트 정도인데 그걸로는 미흡하다』 며 계속의총소집을 주장.
그러자 신상우 부총재가나서 『합의된 의사일정을 깨는 것은 앞으로의 대여전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니 오늘은 일단 들어가자』고 설득, 결국 하오7시25분께 본회의장에 다시 들어가기로 결론.
○…가까스로 속개된 본회의는 나머지 장관들의 답변을 20분 정도 듣고 끝나는가했으나 조순형 의원(의동)의 의사진행 발언으로 또 한번 해프닝을 연출.
조의원은 『총리의 13일 국정보고가운데 김영삼씨 사건에 대한 보고가 왜곡돼있다』며 『김씨가 현행 헌법을 부정한 것도 아니며 그는 의회민주주의자…』라고 말하자 의석에서 이종찬 민정총무가 『집어쳐. 그게 무슨 의사진행 발언이야』라고 소리를 쳤고 이어 여당의석에서 『발언을 중단 시키라』는 등 고함.
조의원은 결국 채의장이 마이크를 끄는 바람에 발언을 다 마치지 못한 채 하단.
격앙된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이총무는 운영위원장 실로 둘아 온 뒤 뒤따라온 의사국장에게『뭣들을 하고 있느냐』고 큰소리로 질책.
○…어수선한 가운데 본회의를 끝낸 민정·민한당은 각기 따로 모여 대책을 숙의.
이종찬총무는 운영위원장 실에서 부총무 및 몇몇 상임위원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병규 국회사무총장·오성균 의사국장을 불러 『의사진행발언이 아니면 발언을 중단시켜야지 뭣들 하고 있는 거냐』고 고함을 지르며 질책.
이총무는 자신이 본회의장에서 고함을 지르고 의사국장을 질책한 것은 조의원이 의정동우회의 이용택 회장·백찬기 총무도 모르게 발언신청을 했고 사무처가 의장을 잘못 보좌해 민정·민한·국민당총무들과 상의 없이 채의장이 발언을 허용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
이총무는 『조의원의 발언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며, 조의원이 우리를 속이고 의제 외 발언을 하는 등 룰을 어긴 것이 문제』라고 강조.
이총무는 이날 김총리의 답변태도에 대해 『답변내용을 놓고 정부와 협의한바 없으며, 내일 보다 충실한 답변을 할 것으로 안다』며『기본방향과 앞으로의 방침을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해「미흡」을 간접시인.
다른 한 당직자는 『야당에 의사진행 발언을 순순히 허용한 것은 우리의 불만을 간접 표현한 것이다』고 비판.
한편 민한당의 유치송 총재는『과거의 총리는 설득하려는 성의라도 있었는데 김총리는 그것마저 없다』고 불쾌감을 표시.
의정동우회 소속의원들도 산회 후 별도로 모임을 갖고 조의원이 의동의 간부들과도 사전에 전혀 협의가 없었던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으나 그렇다하더라도 여당의 야유는 도가 지나쳤다는데 의견일치. <전육·유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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