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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준비 보고 … 전략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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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통일부·외교부·국방부·국가보훈처가 어제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네 부처 모두 통일 준비에 맞춘 제안과 구상을 내놓았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제시한 통일 기반 구축의 후속 작업 성격이 짙다. 통일부는 ‘광복 70주년 남북공동기념위원회’를 구성해 문화·예술·종교 등 분야의 공동 기념 행사를 추진하고 서울-신의주, 서울-나진 간 한반도 종단열차 시범 운행도 북한에 제의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남북 문화 교류의 거점이 될 남북겨레문화원을 서울과 평양에 동시에 개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내부적으론 평화통일기반구축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통일 준비 인력을 양성하고 부처별 전담관을 지정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통일부 보고에서 당면 과제인 남북 관계를 어떻게 타개해 새 국면을 열 것인지에 대한 창의적 구상은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백화점 식으로 나열하거나 일과성에 그치는 사업들이 적잖았다. 크고 작은 제안을 엮어놓은 로드맵이나 청사진이 없다. 통일 준비는 통일에 대한 인식 확산과 더불어 국민의 손에 잡히는 대북, 통일외교 전략의 큰 그림이 밑받침돼야 내부적으로 탄력이 붙는다.

무엇보다 대북 제안이나 구상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남북 대화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보고에서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앉히는 묘책은 내놓지 못했다. 낮은 단계의 교류·사업으로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2010년 천안함 사건 이래의 단절된 남북 관계, 불완전한 평화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을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화 재개를 위해선 5·24 대북 조치 해제나 완화, 금강산 관광 재개를 포함한 포괄적 방안이 필요하다. 북한의 미국 해킹과 미국의 대북 제재로 북·미 관계가 악화하고 있지만, 남북 관계 개선은 별도로 추진돼야 한다. 본격적인 남북 교류협력 사업만 한 통일 기반 구축 작업도 없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의 분수령에 걸맞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외교부는 남북 관계와 북한 비핵화 문제가 서로 끌어줄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 남북 대화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프로세스도 아직 재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주도적인 노력(코리안 포뮬러)을 하겠다고 했지만 북한 비핵화의 정치한 틀은 보이지 않는다. 당위론은 전략도, 정책도 아니다. 북핵에 대한 단계적, 장기적 해결의 틀을 바탕으로 한 가일층의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부는 전방위적인 통일 외교를 통해 통일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이웃 나라인 일본과는 아직도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남북 관계나 통일 기반 구축 작업에서 새 이정표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다. 구상을 현실로 만드는 보다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