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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고민 - 노(老)테크] 하. 주식·채권·펀드 '아는 것이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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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도쿄의 일본증권금융 직원들이 투자 교육을 받고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자신의 연금 자산을 펀드·예금 등에 어떻게 배분할지를 스스로 정하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다.

"높은 수익만 좇다 보면 위험도 커집니다. 고수익.저위험을 바란다면 장기.분산 투자가 꼭 필요합니다."

지난달 5일 일본 도쿄의 일본증권금융 회의실. 30여 명의 직원은 퇴직연금 관리회사인 노무라SAS의 투자 교육 강의에 푹 빠져 있었다.

"펀드마다 수수료가 다른 이유는 뭐냐." "적립식 투자가 왜 안정성이 높은가."

강의 뒤에도 한참 동안 직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오이카와 유이치로(及川雄一郞.41)는 "퇴직 후를 생각하면 앞으론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위기감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못지 않게 보수적인 투자 관행에 젖어 있던 일본인들이 변하고 있다. 금리가 연 0.1%도 안 되는 은행 예금에 만족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직.간접 투자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일본만이 아니다. 청년 시절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영국인 사이먼 쿡(40)은 다시 중동 취업을 고려 중이다. 현재 학원 관리부장 월급으로는 아내와 갓 돌이 지난 딸, 세 식구가 먹고 살기도 빠듯해 재테크는커녕 저축도 어렵다. 그는 "은퇴 뒤까지 고려해 '종자돈'을 만들려면 힘들더라도 월급을 많이 주는 중동 취업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라=앞으로는 연금이나 예.적금 등 소극적 자산 운용만으로는 노후 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쇼날증권 경제연구소장을 지낸 뒤 은퇴한 나이토 도시오(內藤俊雄.67)는 "내 세대는 회사와 나라에서 받는 연금으로도 넉넉한 노후가 가능해 개인적인 투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며 "그러나 갓 결혼한 28세 아들은 벌써 주식 투자 등으로 자산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알리안츠글로벌 인베스터 본사의 유럽 연금 비즈니스 총괄 책임자인 브리지트 믹사 박사는 "독일도 연금 재정이 고갈돼 65세인 연금 수령 연령을 70세로 높이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개인들은 부족한 돈을 벌기 위해 은퇴를 미루거나 적극적으로 투자하거나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스미토모신탁은행 이코노미스트인 이토 요이치(伊藤洋一.55)는 "고령 사회의 개인들은 금융자산의 적어도 20~30%는 예금 외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펀드 등 간접투자 상품이 대안=노후 대비 등 장기 자금을 마련하자면서 위험성 높은 주식 직접투자에 '올 인'하는 것은 곤란하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간접투자에 나설 것을 권한다.

장기 투자를 하면 그 자체로 수익률의 변동폭을 줄여 리스크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특히 적립식으로 투자할 경우 값이 쌀 때는 많이 사고 비쌀 때는 적게 사들여 매입단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또 투자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투자의 위험-수익 형태가 다른 자산에 나눠 분산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펀드가 이런 역할을 대행해 준다.

선진국들이 국민의 장기 자산 형성 수단으로 간접투자를 권하고, 세금 혜택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펀드 선진국인 미국은 물론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개인저축계좌(ISA)로 불리는 비과세 적립식 펀드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수입의 일정 부분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주식과 채권 등 수익성 높은 자산에 투자해 굴려주는 간접투자 상품에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투자도 교육이 중요"=개인을 장기 간접투자로 적절히 이끌기 위해서는 투자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각자 상황에 맞춰 고수익 투자상품을 찾아내려면 금융 IQ를 높이는 게 필수다. 특히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할 때는 말 그대로 '아는 것이 힘'이다.

일본 노무라SAS 조사에 따르면 투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금융자산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자산 배분도 합리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 오에 히데키(大江英樹) 연금부장은 "투자 교육을 한 차례 받을 때마다 금융자산에서 예금 비중이 줄고, 각종 펀드 투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 등이 주축이 돼 각종 투자 교육에 나서고 있다. 초등학생용 교재를 펴내거나 대학생을 상대로 강의하는 등 미래의 투자자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에도 열심이다.

UBS의 예금.연금 사업 부문을 맡고 있는 피터 폴로스키 박사는 "금융회사의 투자 교육은 마케팅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개인들 스스로 자산 형성과 관리에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예금 1125만원 주식형펀드 1815만원
1000만원 지난 3년간 투자했다면

'1125만원 대 1815만원'

2002년 9월에 1000만원을 은행 정기예금과 주식형 펀드(성장형)에 넣었다면 3년 뒤인 올 9월 손에 쥐었을 돈이다. 세금이나 펀드 수수료 등을 떼기 전 수익이 700만원가량 차이 난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2002년 연 4.71%에서 올해 8월 연 3.44%로 낮아졌다. 매년 원금과 이자를 다시 정기예금에 가입했다고 가정하면 수익률은 연 4.01%다. 반면 지난달 22일 현재 설정액 100억원 이상, 3년 이상 된 성장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3년간 81.46%에 달했다. 연평균으로는 21.97%에 해당한다.

이는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가장 수익을 많이 낸 펀드는 3년간 147%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안정성장형 펀드는 평균 연 14.11%, 채권 비중을 높인 안정형 펀드도 예금의 2배가 넘는 연 8.05%의 수익을 올렸다. 채권형 펀드는 올해는 수익률이 크게 나빠졌지만 3년 수익률은 연 4.03%로 예금과 비슷하다.

이런 평균 수익률을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0년 뒤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성장형 펀드 수익률이 유지된다고 보면 10년 뒤 원리금은 7287만원으로 은행예금(1482만원)의 4.9배다. 그러나 증시가 계속 활황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아도 꾸준한 수익률을 내는 안정성장형과 비교해도 예금과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안정성장형의 수익률을 현재와 같은 14.11%로 가정해도 10년 뒤에는 3743만원으로 불어나 예금보다 2.5배 많다.

실제 미국 증시의 연평균 수익률은 1980년대에 17.5%, 90년대에는 18.2%에 달했다. 물론 노후 등 장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를 주식형 등 고수익-고위험 상품에만 넣어 둘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연령.자산 규모.자금 목적 등에 따라 자산을 배분하라고 조언한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은 "30대 이하라면 주식형 비중을 약 75%까지 높인 시세차익 추구형을, 60대라면 주식형은 10% 이하로 하고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에 50%쯤 넣은 원본 추구형을 권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투자 교육"
피델리티 재팬 부회장, 노무라SAS 사장 인터뷰

"노후가 불안한 젊은 층을 위해 투자교육에 정열을 쏟고 있다."(구라모토 야스오 피델리티 재팬 부회장.사진(左))

"단 몇 차례의 투자교육만으로도 자산 형성에 대한 자세가 바뀌는 것이 눈에 보인다."(오우라 요시미쓰 노무라SAS 사장.사진(右))

일본의 금융회사들은 요즘 개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투자교육의 중요성에 새롭게 눈 뜨고 있다.

구라모토 부회장은 최근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20~30년 전 미국과 유럽에 비유했다. 당시 고령화와 재정 적자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과 유럽인들은 은퇴 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이때 금융회사들이 강도 높은 투자자 교육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간접투자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구라모토 부회장은 "특히 젊은 층은 연금 혜택이 줄 것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장기 분산투자에 나서야 한다"며 "이를 돕는 게 금융회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피델리티 재팬은 지난해에만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약 500회의 투자교육을 실시했다.

일본 최대인 노무라증권 그룹은 5~6년 전부터 매년 수십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투자자 교육을 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로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 1위인 노무라SAS의 오우라 요시미쓰 사장은 "교육을 받고 나면 예금밖에 모르던 이들이 투자에 나서는 등 효과가 입증된다"고 말했다. 노무라증권 그룹은 미래의 고객에게도 열심이다. 지난해에만 116개 대학에서 연 2만 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투자 강좌를 열었다. 초등학생을 위해 만화로 투자 입문서를 만들어 배포했고, 유력 일간지와 공동으로 중.고생을 위한 모의 투자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삼성증권과 업무 제휴를 맺고 있는 오우라 사장은 "연말 도입 예정인 한국의 퇴직연금과 관련, 투자교육의 중요성과 효과를 한국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 여윤경 이화여대 교수(소비자.인간발달학과),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대표, 글로리아 미첼 와튼스쿨 연금연구센터 소장, 브리지트 믹사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AG 부사장(유럽 연금 비즈니스 총괄 책임자), 제프 브룩스 HSBC인슈어런스홀딩스 은퇴 비즈니스 담당 수석 부장, 피터 폴로스키 UBS AG 박사(예금 및 연금 사업 부문 담당), 밥 찰스 웟슨와이어트 홍콩지사 매니징 컨설턴트, 데이비드 전 디스커버리 펀드 대표, 오우라 요시미쓰(大浦善光) 노무라 연금서포트앤드서비스 사장, 이토 요이치(伊藤洋一) 일본 스미토모신탁은행 이코노미스트,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 사와카미 투신사장, 구라모토 야스오(藏元康雄) 피델리티 재팬 부회장, 시모무라 미쓰오(下村三郞) 다이이치 투자고문 대표

특별취재팀=표재용.나현철.이승녕.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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