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 일변도의 흑35가 낳은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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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8국
[제3보 (35~52)]
白·安祚永 7단| 黑·趙漢乘 6단

35부터 다시 본다. 흑의 일관된 실리전략을 보여주는 이 한수가 이후의 국면을 상전벽해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이 35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을까.

임선근9단은 "흑은 실리가 많지만 중앙이 부실하고 하변이 엷다. 중앙을 보강하고 하변을 지원한다는 뜻에서 35보다는 중앙으로 한칸 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A의 한칸 뜀은 조한승6단에겐 타협의 수로 비춰진다. 실오라기 하나 차이에 목숨을 내건 승부사들은 종종 중간이나 타협이란 단어에 냉소를 보낸다. 승부란 자기 팔을 내주고 상대의 목을 노리는 것.

조한승6단의 35는 "나는 실리로 간다. 실리로는 경쟁할 꿈도 꾸지 말라"고 상대에게 말하고 있다. 훗날 이 기보를 감상하던 조훈현9단에게 물어봤다.

-35는 일종의 극단적인 전략일까.

"무슨 소리. 무조건 중앙으로 뛰어나가야지."

曺9단의 답변은 언제나 명쾌하다. 35는 너무 치우친 수라는 것이다.

조한승의 37은 그런 '치우침'에 대한 반성이었을까. 37이 엿보는 수단은 '참고도1' 흑1의 붙임이다. 말하자면 하변 흑을 보강하고 이곳 백세력을 삭감한 수다. 그러나 38이 아프다. 曺9단은 다시 말한다.

"기왕 35에 둔 이상 37로는 상변을 받아두고 싶다. 이제 와선 운명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

39가 검토실을 놀라게 한 침입수였다. 조한승6단은 37로 하변을 보강할 때 이 수를 노리고 있었다. 43으로 일단 도강 성공. 백B는 C로 두어 그만이다. 도사 같은 안조영7단은 상대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인상이다.

한데 조훈현9단이나 임선근9단 등은 흑의 이 수순에도 다분히 비판적이다. '참고도2'와 같은 고약한 패맛이 남아 있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44로 상변 백집이 커졌다. 실리일변도의 35가 거꾸로 상대에게 실리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바둑이란 참 묘하다.

무심하게 움직이던 安7단이 52에서 처음으로 공격자세를 취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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