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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캐릭터 만들며 쇼트트랙 선수 떠올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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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호 16면

‘걸어다니는 마시멜로.’

21일 개봉하는 디즈니 ‘빅 히어로’ 만든 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 김상진

지난해 ‘겨울왕국’으로 세계를 강타했던 디즈니가 새롭게 들고 온 ‘빅 히어로’의 비밀병기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슈퍼 히어로를 꿈꾸는 그의 이름은 베이맥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스캔해 적절한 처방을 제공하는 헬스케어 로봇이다. 주인공의 형인 공학도 테디(다니엘 헤니)가 만든 이 로봇은 실의에 빠진 동생 히로(라이언 포터)를 위로하는 한편 친구들과 함께 형의 죽음에 얽힌 배후를 찾아나설 수 있도록 돕는다.

거대한 몸집과 대비되는 아장아장한 귀여운 걸음걸이 등 독특한 매력은 김상진(56) 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1995년 한국인 애니메이터로서는 최초로 디즈니에 입사한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캐릭터 총괄 업무를 맡았다. 21일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그를 1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만났다.

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란.
“애니메이터로 시작해 ‘볼트’부터 캐릭터 디자인을 해왔다. 수퍼바이저는 평면 드로잉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책임지는 일이라 보면 된다. 스토리가 바뀔 때마다 캐릭터들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처음 갖고 있던 매력을 잃지 않고 각각의 캐릭터가 잘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애썼다.”

베이맥스 디자인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카네기멜론대학을 방문해 최신 로봇공학 연구를 살펴봤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재질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단순한 선으로 표현돼 있지만 안에는 뼈대를 촘촘히 구성해 움직임을 논리적으로 구현했다. 걸음걸이는 기저귀를 찬 아기나 펭귄에서 따왔다.”

주인공을 돕는 친구 캐릭터들도 모두 천재 공학도답게 로봇 못지 않은 기술을 갖췄다.
“캐릭터 디자인 작업과 함께 방대한 조사를 병행했다. 전직 엔지니어 출신 아티스트가 같은 팀원이어서 큰 도움이 됐다. 자기부상 원리를 이용한 바퀴로 이동을 한다든가 화학 폭탄을 즉석으로 제조해 공격하는 등 본인들이 대학에서 연구하던 주제가 주무기로 재탄생했다. 로봇공학뿐만 아니라 물리학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지식도 총동원됐다.”
로봇 영화지만 한국인 애니메이터의 감성은 곳곳에서 묻어났다. 테디는 다니엘 헤니의 미소를 쏙 빼닮았다. 돈 홀 감독은 “오디션에서 헤니가 대사 첫 줄을 읽는 순간 테디임을 확신했다”지만, 김 수퍼바이저는 캐스팅 전부터 헤니를 염두에 두고 이미지를 구상했단다. 근육질 와사비(데이먼 웨이언스 주니어)의 헤어스타일은 레게지만 바지는 한복에서 따왔다.

디즈니 최초 한국인 캐릭터 ‘고고’

디즈니 최초로 한국인 캐릭터도 등장한다.
“터프한 스피드광으로 나오는 고고는 김시윤(32) 리드 캐릭터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한국인으로 설정해 놓고 작업했다. 영화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설명은 따로 없지만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을 염두에 두고 체형을 만들었다. 원래 자전거를 타던 캐릭터라 튼실한 허벅지가 필요하기도 했고. 연기는 한국계 배우 제이미 정이 했지만 ‘괴물’에 나왔던 배우 배두나씨의 외모나 표정을 많이 참고했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느낌을 주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한국적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편인가.
“아무래도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 영화도 많이 찾아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해무’를 봤다. 베이맥스의 경우 돈 홀 감독이 일본 여행 이후 종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만들고 보니 목탁을 많이 닮았더라.”
디즈니의 감성 매력은 마블코믹스의 원작을 만나 배가 됐다. 배경인 샌프란소쿄(샌프란시스코+도쿄)는 가상도시지만 마치 실제 로케이션을 한 것처럼 생생하다. 금문교가 등장하는가 하면 벚꽃이 휘날리기도 한다. 특히 업그레이드된 베이맥스가 히로와 함께 첫 비행을 하는 씬이 압권이다.

마블 원작과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
“제목과 캐릭터의 기본 속성만 빼고 다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물론 마블의 장기인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다만 마블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지 않나. 우리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드라마적 요소를 놓치지 않고자 했다. 이런 부분 덕분에 관객분들이 많이 웃고 많이 우시는 것 같다.”

제 42회 애니어워즈 최우수 캐릭터 디자인 부문 후보로도 지명됐다. 다음 계획은.
“‘겨울왕국’의 큰 성공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이번 작품을 하는 데 있어 오히려 동력이 됐다. 더 많은 분들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다음 작품은 ‘모아나’를 준비 중이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월트디즈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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